남국을 찾아서(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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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열도의 두 번째 섬, 규슈의 절반
20대 후반에 떠난 첫 일본 여행에서 일주일 동안 본토(혼슈)의 도쿄와 교토를 다녀왔더랬다. 오사카는 안 갔지만, 뭐, 그만하면 됐다 싶었다. 별로 다를 것 같지 않고. 그래서 30대 중반에 다시 일본 여행을 마음 먹었을 때는, 열도의 남쪽에 위치한 두 번째 섬, 규슈에 가보기로 했다. 겨울이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따뜻한 남쪽으로 가자는 심산도 있었다. 실제로는 전혀 따뜻하지 않아서, 수시로 “사무이(춥다)!”를 외쳐댔지만. 단, 저번처럼 여행을 오래(?)하기는 좀 아까웠기에, 일정을 3박 4일만 잡았다. 그러나 규슈는 거의 남한과 비슷할 정도로 큰 섬이이었다. 다(?) 가볼 수는 없었고, 우리는 섬을 반 바퀴만 돌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도 후쿠오카, 유후인, 아소산, 구마모토, 나가사키로 이어지는..
2025.02.11 -
시드니 6 귀환 후의 책과 나무
호주에서 돌아오며 지원이에게 남은 호주 달러를 모두 건넸다. 지원이가 매번 밥을 사겠다고 고집을 부린 덕에 꽤 많은 돈이 남았다. 20만원 가량 남았는데, 공항에 배웅나온 지원이에게 쥐어줬더니 얼굴이 묘한 표정으로 일그러지고, 자기 애인을 돌아보며 한탄하듯 말했다. “야 얘가 나한테 20만원 줬다!”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친구가 자기 사는 나라에 놀러왔으니 호기를 부리고 싶고 잘해주고 싶은데, 막상 넉넉지 못한 자신의 처지가 속상한 기분. 그 기분은 왜 꼭 이런 순간에 표출되어야 하는 걸까 하는 안타까움. 어쨌든 그렇게 지원이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나는 호주에 대한 책 세 권을 읽었다. 모두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갔던 젊은이들이 쓴 책이었고 그중 두 권은 소설이었..
2024.10.15 -
시드니 5 동네 탐방기
며칠 지나 지원이가 더 이상 우리를 끌고 다니지 않게 되자 나와 현경은 둘이서 제멋대로 동네 체험을 다니기 시작했다. 유스호스텔 근처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와인 한잔을 들고 동네 (영어) 연극을 보다가 정신없이 졸기도 했고 항구의 컨벤션 센터에서 LG 기술로 만들었다고 크게 써진 아이맥스 영화를 보기도 했다. 또 내가 좋아하는 시장 탐방도 여러 군데 갔다. 어시장에서 랍스타를 먹고 부촌의 슈퍼마켓에 가서 농산물과 향신료 코너도 한참 구경했다. 이런 것도 이때부터 시작된 해외여행의 주패턴이었다. 그 도시에서 뜨는(?) 동네를 알아내서 발길 닿는 대로 이리저리 걷다가 슈퍼와 상점들을 들어가보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동네에서 엄청 큰 체육관을 구경하게 됐다. 어느 정도는 축소 규모이긴 하나, 야구..
2024.09.04 -
시드니 4 캥거루와 코알라
호주의 동물들을 보러 가고 싶었다. 하지만 지원이가 자꾸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이곳저곳(카지노, 담배 필 수 있는 공원, 쇼핑몰, 중국 음식점)으로 우리를 끌고 다니면서 “동물원에는 뭐하러 가! 쓸데없이!” 하고 타박을 주었다. 그래도 코알라는 반드시 보아야 했다. 아니, 호주에 와서 코알라도 못 보고 간다는 게 말이 되는가? 캥거루는 뭐 그냥 그래도, 반드시 코알라를 만져볼 수 있게 해주는 동물원을 가야만 했다. 지원이도 결국 체념하고 (동물 보호에 좀 허술한) 가까운 소규모 동물원을 알려주었다. “거기 가면 코알라를 만지고 꼭 껴안게 해줄 거야.” 과연 허름한 동물원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교외에서 운영되며, 열악한 환경 때문에 인터넷 악평에 시달리는, 가끔 시사 고발 프로그램에도 등장하는 그..
2022.08.10 -
시드니 3 유스호스텔의 중년
나이 들어 유스호스텔에 묶는 건 특별한 경험이다. 젊은이들의 열기를 회춘약 먹듯 빨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중년인 내가 요즘 가는 호스텔들은 청춘의 공간이라고만 하기엔 약간의 무리가 있다. 시드니에서 묶던 유스호스텔도 그랬다. 비쌌으니까. 4인실이나 6인실의 침대 하나를 하룻밤에 5만원이나 주고 묵을 젊은이는 많지 않다. 환율인지 생활수준인지의 이득을 보는 북구의 젊은이들이라면 또 몰라도. 어쨌든 그곳은 인기 폭발이었고 한달전에 예약을 했음에도 나는 이틀을 다른 숙소에서 보내고 나서야 그곳으로 옮길 수 있었다. 가보니 유색인은 거의 없었고 온통 길쭉한 금발들뿐이었다. 칙칙한 호텔에 있다가 사방에 세련된 디자인의 그래픽과 문구들이 씌어 있으며 멋진 가구와 주방용품을 세심하게 비치한 그곳에 짐을 풀고 나자 ..
2022.06.08 -
시드니 2 카지노와 담배 체험
그날 저녁에는 당연한 것처럼 지원을 다시 만났다. 지원은 해외 체류 친구들이 으레 그렇듯 우리를 냅다 한국 음식점으로 데려갔고 호주 음식에 대한 기대가 없을 수밖에 없는 우리는 오히려 신기해하며 오묘한 호주산 한식을 먹었다. 그러고 나서 맥주라도 한 잔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원이 데려간 곳은 커피숍도 아니고 카지노였다. 그래, 지원이 원래 도박을 좋아한다고 들은 기억이 났다. 하지만 지원의 태도는 자기가 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도박이 금지된 한국에서 온 친구들에게 휘황한 도박장을 구경시켜주고 재미 좀 보여주겠다는 의욕이 솟는 듯했다. 이미 마카오의 휘황한 도박장들을 실컷 보고 온 나이고 카지노 정도야 할리우드 영화에도 매일 나오는 판인데 굳이 싶었지만 어쨌든 지원을 따라서 가본 도박장은 꽤 허름했다..
2022.04.25 -
시드니 1 마지막 휴가는 나이 많은 연인들과 함께
그러고 보니 그 동안 나는 유럽, 아프리카(이집트), 아시아(일본, 캄보디아)에 걸쳐 무려 세 대륙을 가보았고 아메리카 대륙은 괌으로 살짝 맛을 봤다고 우기면, 이제 호주만 가면 5대륙 완전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싸… 그렇게 해서 순전히 대륙 구색 맞추기를 위해 호주 여행을 계획했다. 호주에는 친구(현경)의 친구(지원)가 살고 있었다. 현경을 꼬셨다. 지원이를 만나러 같이 가보자고. 현경은 망설였다. 해외 여행은 가고 싶지만, 호주도 좋지만, 지원을 그다지 만나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게다가 지원은 시드니에 살고 있었다. 그때 호주에서는 한창 맬버른이 핫하고 힙한 도시로 떠오르고 있었는데, 아무리 돛단배 모양 오페라 하우스가 멋지다고 해도, 시드니는 너무 구리지 않냐는 요즘 중론이 있었다. 현경에게..
2022.03.19 -
마카오 출장 2
(앞 글에 이어서) 어제 마카오 들어올 때 비행기에서 우연히 본 홍콩의 영자 정론지,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의 기사까지 인용해서 심도 있는 기사를 쓰고 싶었다. 마카오의 카지노 기업가들이 환경까지 해치고 있다는 요지였는데, 사실 카지노든 뭐든 건설은 거의 가장 환경에 좋지 않겠지만 카지노에 대한 인식이 여러 가지로 안 좋으니 밉보는 게 아닐까 싶긴 했다. 그런 시선을 의식한 듯, 어제 기자 회견 장에서 프리젠터는 새 호텔의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거대하게 펼쳐지는 로비의 도박장에 대한 소개는 전혀 하지 않고, 자신들이 그리는 마카오의 새로운 미래로 '쇼핑과 공연, 그리고 convention(국제 회의) 산업'을 내세웠다. 거대한 호텔 내부를 둘러보니 과연 다른 건 몰라도 쇼핑은, 그것도 명품 쇼핑은 눈 돌..
2020.07.23 -
마카오 출장 1
지난번 퇴사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거의 3년 동안, 여행이든 출장이든 해외에 다녀오지 못했다. 나갈 돈도 없었지만 끔찍한 직장들을 연이어 두 군데를 다니는 동안 없던 불면증과 알콜 장애 및 (나중에 발견된) 지병마저 생길 지경으로, 삶에 여유가 전혀 없었다. 그러다가 마지막 직장에 들어가며 한숨을 좀 돌렸다. 비정규직인 데다가 명목상은 일주일에 이틀만 출근하면 되는 조건이었다. 일간지에서 발행하는 주말판 신문의 문화 섹션 객원 기자 자리였다. 요즘은 김영란법 때문에 어떨지 모르겠지만 10년전만 해도 기자들은 출장, 혹은 ‘공짜 해외 여행’을 갈 기회가 많았다. 신문사에서 자기네 돈을 들여 직원들을 해외 출장 보내는 게 아니라, 기업이나 기관에서 자신들의 상품이나 실적을 홍보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들여 ..
2020.07.06 -
냄새나는 과일과 밀림 속 사원, 캄보디아 2
동생의 프놈펜 집은 번화가에 가까운 넓은 거리에 있었다. 넓은 거리라고 해봤자, 오토바이들이 점령한 길가를 합쳐 간신히 4차선인 도로였지만 말이다. 1층은 상점이었고 그 위는 주택인, 유럽식 아파트였고 동생의 집은 3층이었다. 커다란 통창 밖으로 가로수가 우거져 아래 거리를 살짝 가려주었다. 비교적 고급이라 그런지 월세가 30만원 가까이 된다고 했다. 작은 방 둘에 거실과 주방이 분리된 아담한 크기였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 집에는 외부를 향해 뚫린 구멍이 있었다. 추운 겨울이 있는 우리나라에는 구멍이 뚫린 건물이란 주차장 빌딩 밖에 없지만, 비바람만 적당히 막으면 되는 열대 지방 주택은 아예 환기 구멍을 '영구히' 열어놓는 모양이었다. 지붕 바로 아래 벽 위쪽에 약간의 장식이 가미된 주먹만 한 구멍이 두..
2020.03.19 -
저개발국의 외국인, 캄보디아 1
나에게는 한 살 차이가 나는 여동생이 있다. 어릴 때는 사이가 안 좋았고 어른이 되어서는 친하게 지낸 적도 있었다. 어쨌거나 그녀는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타인 중 하나였으니까 그만큼 쌓인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내 인생의 어느 시점까지는 그녀와 같이 간 해외여행이 가장 길었다.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이 같이 다닌 여행이 꽤많았고 성인이 되어서도 우리 둘이 긴 해외여행을 두 번이나 다녀왔으니까. 연년생 자매의 사이란 어때야 하는 걸까? 우리 자매의 사이를 설명할 여러가지 표현이 있겠지만 나는 다음과 같이 얘기할 때가 가끔 있다. 우리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같은 학교를 다녔지만 단 한 번도 등하교를 같이 한 적이 없었다고. 동생과 함께했던 첫 유럽여행 때, 2주가 채 안 되..
2020.01.28 -
출장은 처음 2, 독일에서 한국 도서전
드디어 전시가 개막하고, 이제 일주일 동안 순번을 나누어 전시장 지키기와 관리만 하면 되는데, 사고가 터졌다. 자원봉사자들이 머물던 게스트하우스에서 한밤중에 불이 난 것이다. 사실 우리 직원들 숙소보다 한 급 낮은 자원봉사자 숙소 때문에, 그리로 보내진 직원들이 불만을 표현했던 차였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자원봉사자 처지가 되었던 우리 회사 직원들은 무척 놀라고 무서웠을 것이다. 새벽녘에 짐도 못 챙긴 채 뛰쳐나왔다가, 다른 직원들이 있는 제대로 된 호텔로 이동한 자원봉사자 처지의 직원들은 아늑한 방에서 나와 마주한 채 불같이 화를 냈다. 고소 운운하는 말까지 나왔다. 자기들이 그 숙소에 묵게 된 과정 자체가 불법이었으니까 말이다. 새로 호텔방을 배정해주고 하루 쉬면서 옷가지를 사도록 돈을 주고..
2019.12.04 -
출장은 처음 1, 독일에서 한국 도서전
20대 후반에 일본을 길게 다녀온 후, 30대 중반이 되도록 해외여행을 한 번도 못 갔다. 그 나이 또래가 많이 그랬듯 워커홀릭으로 살던 시절이었다. 주중에는 (술자리를 포함해서) 밤 12시 이전에 집에 들어오는 일이 없었고 주말에는 하루 종일 자거나 멍하니 티비를 봤다. 휴가철이 되어도 3일 이상 휴가를 내기가 힘드니, 국내 바닷가에 잠깐 다녀오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자 참다못한 애인은 혼자 장기 휴가(그래봤자 일주일)를 내고 해외여행을 나갔다오기도 했다. 그 나이 또래가 슬슬 그러기 시작했듯이 말이다. 그러다가 내가 일하던 전시기획사에서 독일에서 열리는 대규모 전시회(박람회)를 기획하게 됐다. 반 년 이상의 준비끝에 스무 명 정도의 직원들이 프랑크푸르트로 2주 동안 출장을 가게 됐다. 직장에서 해외 ..
2019.12.04 -
산업 역군과 함께한 2, 교토
교토는 도쿄와 앞뒤만 바꾼 글자로 나를 헷갈리게 한다. 아마 많은 사람이 그렇겠지. 아무튼 나랑 애인은 메트로폴리스 도쿄에서 5일을 보내고 나서, 애인의 친구가 역시 프로그래머로 취업해 살고 있던 전통의 도시, 교토로 향했다. 애인의 친구는 우리가 오자마자 저녁식사로 한국식 불고기 집을 데리고 갔다. 최대한 현지식을 먹어보고 싶던 우리는 좀 실망했지만, 생각해보면, 일본 쿄토의 한국식 불고기 집이라는 것도 꽤 독특한 아이템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에게는 찾아오는 친구가 별로 없었던 듯, 도쿄의 친구와는 확연히 구별될 정도로 우리를 반가워하며, 모처럼의 한국 음식과 함께 진한 향수에 젖는 듯했다. 밥을 먹고 들어간 교토의 원룸은 요코하마의 원룸보다 꽤 넓었다. 그리고 혼자 사는 남자의 방답지 않게 무척..
2019.10.26 -
산업 역군과 함께한 1, 도쿄
지구에서 서양력으로 새천년이 시작되던 즈음, 도쿄에는 나의 친구가 취업해 일하고 있었고, 교토에는 애인의 친구가 취업해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둘 다 프로그래머였다. 그때 한창 인터넷 붐을 타고 인력이 부족해진 일본에서 한국인 프로그래머를 왕성하게 수입했더랬다. 서울에는 프로그래밍과 일본어를 동시에 가르쳐주는 학원들까지 반짝 생겨날 정도였다. 그러므로 나는 애인이랑 공짜 숙소(친구들의 집)가 마련된 일본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 여름 휴가를 내서, 도쿄에서 5일, 교토에서 5일 머물기로 했다. 앞뒤 주말을 껴서 말이다. 사실 내 친구의 집은 도쿄가 아니라 요코하마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인천쯤이랄까. 친구는 요코하마의 전형적인 일본식 원룸에서 출퇴근하고 있었다. 마치 연립주택처럼 옆으로 길게..
2019.10.13 -
드디어 남국을 찾아서, 괌
내가 처음 애인과 함께 간 ‘남국’은 괌이었다. 90년대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의 해외 신혼여행지로 처음 개발되었던 곳. 미국령이지만 사실은 일본인들이 많은 섬. 미국령이지만 미국 비자가 필요없는 곳. 그래서 얼마전 번듯한 직장을 그만두기 직전, 굳이 무리해 받아놓았던 미국 비자가 아무 소용이 없었던 미국땅. 2000년대 초반 괌으로, 5년간 사귄 애인과 첫 해외여행을 떠났다. 그 당시는 아무리 오래 사귄 사이라도, 애인과 떳떳이 여행을 떠나는 분위기가 아니었고, 우리는 주변의 누구에게도 우리의 해외여행 출발을 알리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떠나는 해외여행, 그런 게 요즘은 존재하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하다못해 우리가 그때 여행지에서 실종됐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리고 우리..
2019.06.05 -
성지순례 3 이스라엘의 국경과 사해
얼마전 텔레비전에서 ‘선을 넘는 녀석들’이라는 여행 프로그램을 봤다. 연예인들이 역사 선생님과 함께 세계의 국경들을 실제로 넘어본다는 내용이었다. 그중 당연히 이스라엘 국경도 포함이 돼 있었다. 프로그램에서는 요르단과 이스라엘 사이 육로 국경을 차로 넘었는데, 그 살풍경을 보자, 오래전 내가 부모와 함께 성지순례를 가서 경험했던 이스라엘의 입국장 기억이 확 되살아났다. 우리는 비행기로 이스라엘에 들어갔다. 비행기에서부터 가이드가 여러 가지 주의를 많이 주었다. 기본적으로, 절대 삐딱한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되고 묻는 말에 고분고분 대답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 사람들 사이 갈등이 심하고 목숨까지 위태로워지는 장소에 살고 있거나 그런 곳으로 여행을 갔다면 삐딱한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
2019.05.21 -
성지순례 2 터키의 고대 문명과 가죽 코트 패션쇼
성지순례에서 왜 터키를 가는지도 의아했다. 그냥 부모가 섭외한 여행사에 모든 것을 맡기고 몸만 따라간 패키지 여행이었으니 아무 사전 공부가 돼 있지 않았다. 전세 버스 안에서 마이크로 울려퍼지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그제야 백지 같던 머릿속을 채웠다. 알고 보니 터키는 고대 로마 유적의 보고일 뿐 아니라 신약성경의 후반부, 예수의 사후에 제자들이 전도 여행을 펼친 곳이었다. 하긴 터키는 옛날에 동로마 제국이었고 기독교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게 동로마 제국이니까. 이스탄불에서 짧은 궁궐과 박물관 관광을 마치고 터키 전역을 일주일에 걸쳐 도는 일정을 위해 전세 버스에 올랐다. 터키는 매우 큰 나라였다. 버스에서 하루 종일 보내는 시간이 몇날 며칠 계속되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유적, 트로이 유적 같은 ..
2019.04.30 -
성지순례 1 이집트의 무덤집들과 시나이 산
글쓰기 모임을 같이 하는 동료들이 '여행은 그런 것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블로그를 하기로 했단다. 그러고 보니 나도 비슷한 주제로 여행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거의 20년 전, 나 대학원생 때 부모와 두 번째로 함께 간 해외 여행을 떠올려본다. 그건 그냥 해외 여행이 아니라 '성지순례'였다. '부모와 함께 한 여행'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예상 가능한 모습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성지순례' 하면 떠오르는 고정관념과는 거리가 먼 여행이었다. 당시 종교에서 멀어져가던 나에게는 좀 다른 의미의 여행이었으니까. 그보다도 5년 전, 아버지 환갑 때 3박4일 동남아 패키지 여행을 다녀온 후, 엄마가 두 번째 패키지 여행을 가자고 했다. 20대 초반 허리까지 내려왔던 내 머리칼은 20대..
2019.04.23 -
부모와 동남아 여행
나의 부모는 나이가 꽤 들어서 결혼하고 나를 낳았다. 그래서 내가 아직 학생일 때 그만, 아버지의 환갑이 닥치고 말았다. 이제 60세는 ‘장년’이나 마찬가지라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고 해도, 그냥 지나보낼 수는 없었다. 환갑잔치까지는 아니라도, 친척들을 모아 식사라도 해야 했다. 학생이긴 해도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했기 때문에 아주 돈이 없지는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곤란했던 것 같다. 돈도 있는데, 안 쓰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홀랑 쓰자니 아깝고. ㅠㅜ 고민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그냥 당신이 돈을 댈 테니 같이 해외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 넷은 처음으로 가족 해외여행을 떠났다. 아버지가 직접 알아보고 예약을 했기 때문에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저가 패키지 여행이었던 것 같..
2019.03.29 -
아빠의 해외 출장
어린 시절 나에게 ‘해외’란 텔레비전 속이나 아빠의 출장 선물로만 존재하는 곳이었다. 아빠는 가끔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아무래도 일로 갔다기보다는 그냥 놀러 갔다오는 게 아닐까 싶었다. 아빠의 출장 사진을 보면, 중년의 남자들이 관광지 앞에서 일렬로 늘어선 모습뿐이었으니까. 아빠는 외국에 다녀오면 늘 선물을 사가지고 왔다. 엄마를 위한 선물은 주로 옷이었고 우리 선물은 거의 인형이었다. 그냥 바비돌, 옛날 말로 ‘마론인형’을 사가지고 올 때가 대부분이었지만, 한 번은 2층짜리 인형의 집 세트를 사가지고 와서, 우리 자매는 몹시 신이 났더랬다. 한 번은 남미를 다녀와서 기괴한 사진집을 잔뜩 사왔다. 남아메리카 원주민들, 그때 말로 ‘토인’들의 무시무시한 모습을 찍은 총천연색 사진집이었는데, 나는 왠지 가..
2019.03.18 -
배낭족 5 부다페스트의 첼리스트와 파리의 사수생
오래전 떠났던 유럽 배낭 여행은 원래 두 달 예정이었다. 비행기 표를 그렇게 끊었다. 하지만 유럽에서 이리저리 헤매다닌 지 한 달이 되어가자, 나는 이십대 초반의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육체적으로 기진맥진하고 정신적으로도 너덜너덜해졌다. 나는 널부러져 지내기 시작했다. 게다가 부다페스트에서, 우연인지 동유럽은 원래 그랬던 건지, 아주 값싸고 괜찮은 숙소를 얻었다. 명성대로 인형 같은 외모의 헝가리 젊은이들이, 방학 동안 텅빈 학교 교실에 책상들을 붙이고 그 위에 매트리스를 올려 배낭 여행자들에게 내주면서 하루에 만 원도 안 되는 돈을 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공동 화장실 시설이 나쁘지도 않았다. 개혁개방 초기, 자본주의가 밀려들기 시작한 초반의 동유럽이었어도 샤워실까지 있는 고등학교 시설은 한국보다 훨씬 좋..
2019.03.08 -
배낭족 4 밤기차와 동반자
그 다음부터는 여행 일정이 뒤죽박죽이었다. 숙소를 안 잡고 계속 밤기차를 탔기 때문이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숙박비를 많이 낭비(?)했기 때문에, 정액권인 유레일 패스를 이용해 당분간 기차에서 취침을 해야 했다. 밤기차의 침대칸을 숙소로 삼기 위해서는 잠들기 직전에 기차를 타서 깨어난 직후에 내릴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게 좋았다. 유럽을 상하로 이동해서는 그 거리가 제대로 안 나오고 북유럽은 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좌우, 즉 동서로 이동을 해야 했다. 오늘은 스페인, 내일은 헝가리, 모레는 이탈리아, 글피는 체코, 뭐 이런 식으로 유럽 대륙을 지그재그 수놓으며 젊은 체력을 탕진했다. 그러다보면 교통의 요지를 많이 거치게 되는데, 프랑크푸르트는 다섯 번쯤 들른 것 같다. 하지만 첫날 기차역에서 역무원에게 ..
2019.03.04 -
배낭족 3 남프랑스의 히피와 요양원
그래도 정말 첫 해외 여행다운, ‘눈이 번쩍 뜨이는 문화 체험’을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아비뇽의 거리예술제(프린지페스티벌)를 꼽아야 할 것 같다. 일부러 시간을 맞춰 갔을 리는 없고, 아마도 우연히 얻어걸린 며칠 동안, 글로만 읽던 서양의 히피 문화를 거리 공연자들을 통해 직접 볼 수 있었던 신기한 체험이었다. 사실, 길가에 벌거벗다시피 누워 한참을 흐느적거리며 신음하던 여자 무용수 말고는 별로 기억 나는 게 없지만… 그리고 다음 행선지인 아를에서도 공연을 하나 보긴 했다. 그곳은 고대 로마의 원형 경기장이 남아 있는 소도시였는데, 내가 도착했을 때 거기서, 역시 우연히도 록그룹 산타나의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물론 원형 경기장이란 곧 야외 공연장인 셈이니 뻥 뚫린 천장으로 엄청난 음량의 공연 음악이 고..
2019.03.04 -
배낭족 2 파리의 욕망이 향하는 곳
영국을 떠난 나랑 동생은 당연히 파리로 향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파리 중앙역에 내렸는데 웬 중년의 백인 남자가 한국어 손글씨가 적힌 종이를 내밀며 우리에게 곧장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좋은 방 있어요’ 나랑 동생은 놀란 눈으로 덤벼들다시피 종이를 받아들고 자세히 뜯어보았다. 남자는 서툰 영어로 자기 집에 남는 방이 있는데 싼 값에 줄 테니 따라오라고 했다. 그리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물론 공중전화를 써야 했던 시절이다. 남자가 내민 전화기 너머에서는 젊은 한국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반가움에 소리를 지르다시피 통화를 하고 나서 설명을 들은 대로 지하철을 타고 파리 교외 지역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먼 길이었다. 한 시간쯤 걸리는 듯했고, 지하철 역에 내려서도 작은 계곡 같은 곳 옆으..
2019.03.01 -
배낭족 1 영국의 자매와 고추장
슬슬 대학 생활이 싫증 날 무렵, 3학년을 마치고 휴학했다. 당시 한창 유행하던 영화 만들기 수업을 들으며 원없이 놀고 있는데 엄마가 물었다. “미국으로 6개월 어학 연수 갈래, 유럽으로 두 달 배낭 여행 갈래?” 왠일로 큰돈을 대줄 뿐 아니라 선택의 옵션까지 주겠다는 거였다. 난 당연히 두 달 유럽 배낭 여행을 선택했다. 나보다 한 살 어린 동생과 동생의 친구 한 명과 함께 영국으로 떠나기로 했다. 우리 여자 셋은 거의 자기 몸집만 한 크기의 배낭을 사고 서울의 여행사에서 왕복 항공권과 유레일 패스를 샀다. 숙박은 런던 도착 첫날 단 하루만 어느 호텔을 예약했다. 다른 정보나 그 외의 준비는 [세계를 간다]라는 두꺼운 여행책 한 권이 전부였다. 비행기 안은 담배 연기로 자욱하던 시절이었다. 7월이었지만..
2019.02.27 -
여행의 불청객
쿠바의 아바나에는 부에나비스타소셜 클럽의 음악을 들려주겠다며 으슥한 클럽으로 데려가 술값을 바가지 씌우는 삐끼가 있고, 태국의 방콕에는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라며 봉지를 쥐어줘서 얼결에 던져주고 나면, 모이값을 달라는 강매가 있다. 여행을 다니다보면 한두 번쯤 겪는 관광지 사기다. 나도 중국 북경에서 인력거를 탔다가 으슥한 골목으로 끌려가서 수고료를 갈취 당했고 그리스의 피레우스(인천항 같은 곳)에서는 짐가방을 들어주겠다며 정신을 빼놓는 소매치기들에게 당한 적이 있다. 그런 일을 당하면 순간 뭐에 홀린 듯 머릿속이 멍해지는 '멍청이 관광객 증후군'에 걸린다. 요즘은 멀리 갈 것 없이 거주지에서도 생활 속 여행을 즐겨보자고 주말마다 '따릉이'를 타고 돌아다녔더니, 40년 넘게 살아온 서울 근교에서도 비슷한 ..
2018.01.16 -
여행기의 효용
샤덴프로이데처럼, 독일어에는 한 단어로 있지 않을까? 자신은 하지 않아도 돼서 내심 다행스러워하며 남의 모험을 추켜세우는 그런 심정을 의미하는 단어.
2018.01.15 -
back home after years of travel
half broke half dazed
2018.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