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23. 18:10ㆍ동남아를 찾아서
(앞 글에 이어서)

어제 마카오 들어올 때 비행기에서 우연히 본 홍콩의 영자 정론지,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의 기사까지 인용해서 심도 있는 기사를 쓰고 싶었다. 마카오의 카지노 기업가들이 환경까지 해치고 있다는 요지였는데, 사실 카지노든 뭐든 건설은 거의 가장 환경에 좋지 않겠지만 카지노에 대한 인식이 여러 가지로 안 좋으니 밉보는 게 아닐까 싶긴 했다.
그런 시선을 의식한 듯, 어제 기자 회견 장에서 프리젠터는 새 호텔의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거대하게 펼쳐지는 로비의 도박장에 대한 소개는 전혀 하지 않고, 자신들이 그리는 마카오의 새로운 미래로 '쇼핑과 공연, 그리고 convention(국제 회의) 산업'을 내세웠다. 거대한 호텔 내부를 둘러보니 과연 다른 건 몰라도 쇼핑은, 그것도 명품 쇼핑은 눈 돌아가는 질과 규모로 구비가 돼 있었다. 쇼핑에 전혀 관심이 없던 나도 침을 줄줄 흘리다가 결국 신발 하나를 샀을 정도니까.

즉, 온가족이 놀러와서 아빠들은 도박하고 엄마들은 쇼핑하고 아이들은 공연을 보는 가족 휴양지(?)라는, 야심찬 비전이 구현되는 중이었고, 어쩌면 그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삶의 순간인지도 몰랐다.
나는 신문사로 돌아와서 일반적인 관광지 소개 기사를 쓴 다음, 말미에 약간 치기어린 비판을 슬쩍 끼워 넣었다. 담당 부장이 데스크를 보면서(검수를 하면서) 그 부분을 슬쩍 지적하기에("요런 거 써도 괜찮을라나..") 나는 벌떡 일어나서 어리광을 부리듯 소리쳤다. "아, 그거요! 환경 파괴 자행하고 미풍양속 해치는 카지노 조폭 물러가라~ 하고 쓰려다가 많이 참은 거예요!"
그러자 부장은 물론 같은 팀 기자 두 명도 모니터 너머에서 고개를 번쩍 들고 일제히 양손을 내저으며 "어우 그러면 안 돼지" 하고 울상을 지었다. 기사는 그대로 출고됐다. 참 좋은 사람들이었다.

몇 달 후에, 어느 극장에서 상연 예정인 연극의 press call(시사회)을 갔다가 마카오의 정킷을 주관했던 담당자를 만났다. 아마 이번 프레스콜도 주관을 맡은 모양이었다. 마카오 때 나와 룸메이트였던 기자도 잠시 마주쳤지만 그녀는 나를 모른척했다. 내가 객원이라서 무시하나 싶었는데 잠시 후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왜냐하면 시사회 입장을 하기 위해 명함을 제출하는데, 담당자가 나를 보더니 대뜸 말을 건넸기 때문이다. "어휴 저번에 마카오 기사 그렇게 쓰셔가지고 제가 얼마나 곤란했는지 아세요?"
나는 순간 벙 쩌셔 "네? 아니, 무슨 말씀을..." 하고서 어물어물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그리 영향력 있는 매체도 아니고, 주요 지면도 아닌 데다가, 대부분은 평범한 관광 기사였고 비판의 말은 아주 슬쩍 단 한 줄 넣었을 뿐이며, 더구나 몇 달이나 지난 후인데 아직 기억하고 있다가 바로 알아보고 쏘아붙이다니.. 놀라웠다.
문득 예전에 꽤 좋은 사람이었던 학교 선배에 대한 소문이 기억 났다. 기자가 되더니, 정킷으로 간 호텔에서 취재처 돈봉투를 거절한 다른 기자에게 폭언을 퍼부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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