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4. 23. 18:05ㆍ중동이라니
글쓰기 모임을 같이 하는 동료들이 '여행은 그런 것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블로그를 하기로 했단다. 그러고 보니 나도 비슷한 주제로 여행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거의 20년 전, 나 대학원생 때 부모와 두 번째로 함께 간 해외 여행을 떠올려본다. 그건 그냥 해외 여행이 아니라 '성지순례'였다. '부모와 함께 한 여행'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예상 가능한 모습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성지순례' 하면 떠오르는 고정관념과는 거리가 먼 여행이었다. 당시 종교에서 멀어져가던 나에게는 좀 다른 의미의 여행이었으니까.
그보다도 5년 전, 아버지 환갑 때 3박4일 동남아 패키지 여행을 다녀온 후, 엄마가 두 번째 패키지 여행을 가자고 했다. 20대 초반 허리까지 내려왔던 내 머리칼은 20대 후반이 되면서 짧아져, 어깨를 좀 넘는 정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이는 더 들었지만 더 어려진 나는, 서서히 노인이 되어가는 부모의, 경제적 문화적 원조를 또 한 번 받아야 했다.
이번엔 성지순례를 가자고 했다. 나의 부모는 오랜 천주교 신자였다. 아버지는 군대에서 세례를 받은 후 잠시 수도원 생활까지 했고 엄마는 직장을 다니며 시집을 못 가 속상할 때 성당에서 마음의 의지를 찾았다고 했다. 나는 대학에 들어간 후 성당 다니기를 그만두었지만 완전히 무신론자가 되지는 못한 채 큰 축일에는 부모를 따라 미사에 참석하곤 했다.
천주교 관련 여행사에서 마련한, 무려 2주에 걸친 일정이었다. 완전히 종교적인 여정만 있는 것은 아니었고 관광도 좀 하면서 이집트에 잠깐 들르고, 터키를 오래, 이스라엘을 짧게 도는 루트였다.

공항에서 여행사 관계자와 다른 일행들을 만났다. 우리 가족 넷을 포함해서 총 10명이었다. 여행사 사장 겸 가이드인 중년 남자와 그의 친구 한 명, 그리고 청소년 아들을 동반한 아줌마 한 명, 그리고는 신부 한 명과 예비 수녀 한 명이 우리 일행이었다.
수녀 서원을 한 달 앞두고 성지 순례를 왔다는 내 또래 젊은이가 예비 수녀였다. 하지만 그녀는 파마를 하고 화장도 짙게 하고 젊은이답게 옷도 신경 써서 차려 입은, 꽤 평범한 모습이었다. 다만 심각한 표정으로 늘 지나치게 배려심 있게 행동하고 식사 때 기도 시간이 좀 길다는 게 남달라 보였을 뿐. 그리고 머리를 빡빡 깎다시피 한 중년의 신부가 있었는데, 이상하게 그는 성직자라기보다는 조폭처럼 험상궂은 인상이어서, 나는 여행 내내 의아하게 흘금거리며 관찰했지만 끝내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어쨌든 우리는 우선 이집트의 카이로에 도착했다. 곧바로 피라미드를 보러 갔다. 카이로 시 외곽의 쿠푸 왕 피라미드 를 향해 한참 도로를 달렸다. 양쪽으로 펼쳐진 도시는 온통 황톳빛이었다. 그리고 외곽으로 나갈수록 더욱 돌더미처럼 보이는 고대 건축물 풍의 낮은 집들만 보인다 했더니, 그게 바로 무덤들이었다.
카이로는 묘지 위에서 생활하는 도시라고 했다. 특히나 부유한 자들이 도시 외곽에 꽤 그럴 듯한 집처럼 지어진, 사후에도 살 수 있는 무덤을 짓고, 그러고 나면 가난한 자들이 그 돌집들에 들어가서 산다는 거였다. 그제야 고속도로 양쪽으로 펼쳐진 기묘한 건물들의 모습이 이해가 갔지만, 좀처럼 믿어지지가 않았다. 땅속에는 망자가 안치되고, 그 위에 묘비처럼 세워진 돌집 속에 누군가 들어가서 산다면, 그 풍습은 ‘자선’일까 아니면 ‘무단 점거’일까?
성지순례 여정에 왜 이집트가 포함되나 했더니 이집트에는 구약성서의 모세와 관련된 성지가 있었다.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홍해뿐 아니라, 그가 신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다는 시나이 산 말이다. 이집트의 사막 지대 한쪽에는 붉은 흙과 바위로 이루어진 산맥이 형성돼 있고 그중 가장 높이 솟은 산이 시나이 산이었다.
새벽 3시쯤 일어나서 계단으로 이루어진 등산 코스를 올랐다. 해가 뜰 무렵 시나이 산 정상에 도착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성지순례를 온 듯한 세계 각국 사람들이 모였다. 그중에서도 마케도니아에서 온 청년들이 우리 일행에게 같이 사진을 찍자고 왁자지껄하게 제안했다. 우리가 마케도니아라는 나라를 잘 모르는 것 같자 몹시 실망한 표정을 지으면서 알렉산더 대왕의 나라라고 힘주어 일러주었다.

몇 년 전 어느 출판사 사장이 주최한 술자리에서 해외 여행 경험을 각자 자랑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요는, 몇 개의 나라, 혹은 몇 개의 대륙을 가보았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자랑스럽게 아프리카 대륙을 가보았노라고 손을 들었다.
그러자 그 사장이 물었다. 아프리카 어디를 가보았냐고. 나는 약간 미적거리면서 이집트라고 말했다. 중동에 가까운 이슬람 국가이긴 했지만 엄연히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였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겸연쩍기는 했다.
그러자 사장은 힐난조로 단정을 내렸다. “성지순례 다녀왔구만” 어떻게 알았지? 나는 할말이 없었다. 고개를 주억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어진 질문에,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부모의 존재와, 내가 대학원생 때 부모를 따라갔다온 사연까지 모두 고해 바쳤다. 내가 이집트에 다녀온 경험을 자랑한 기회는, 그때뿐이었다. 이집트 여행은, 성지순례는, 부모와 함께 한 여행은, 그리고 여행 자랑은, 나에게 이런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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