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3 이스라엘의 국경과 사해

2019. 5. 21. 16:11중동이라니

얼마전 텔레비전에서 선을 넘는 녀석들이라는 여행 프로그램을 봤다. 연예인들이 역사 선생님과 함께 세계의 국경들을 실제로 넘어본다는 내용이었다. 그중 당연히 이스라엘 국경도 포함이 돼 있었다. 프로그램에서는 요르단과 이스라엘 사이 육로 국경을 차로 넘었는데, 그 살풍경을 보자, 오래전 내가 부모와 함께 성지순례를 가서 경험했던 이스라엘의 입국장 기억이 확 되살아났다.

 

우리는 비행기로 이스라엘에 들어갔다. 비행기에서부터 가이드가 여러 가지 주의를 많이 주었다. 기본적으로, 절대 삐딱한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되고 묻는 말에 고분고분 대답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 사람들 사이 갈등이 심하고 목숨까지 위태로워지는 장소에 살고 있거나 그런 곳으로 여행을 갔다면 삐딱한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젊을 때의 나는 늘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었지만, 그것은 내가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아왔다는 뜻이었고, 내가 그렇게 살 수 있게 해준 세상에 감사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이가 든 지금은 그 감사함도 깨닫게 되었지만 여전히 삐딱한 시선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기도 하다. 감사를 바탕에 둔 삐딱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스라엘 입국장에서 우리 일행은, 총을 가지고 있냐는 심사관의 질문에 다 같이 왁 웃음을 터뜨렸던 때를 제외하면, 가이드의 주의 사항을 성실하게 따르고 무사히 이스라엘에 입국했다. 베들레헴에서는 예수의 탄생 교회를 방문하고, 요르단 강가의 예수 세례 기념 교회에서 미사를 드린 다음, 예루살렘에서는 예수가 로마 총독부에서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가를 지고 걸었던 길을 따라 걸었다. 통곡의 벽에도 가서,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유대인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묵직해졌다.

 

하지만 마지막 날, 우리 일행이 어느 국제적 체인의 번듯한 호텔에 들어가서 자고, 다음날 아침 공항 갈 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무슨 여행이 이런가 싶어 갑갑해졌다. 호텔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어졌다. 가이드는 절대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두었던 터였다. 나는 부모에게 아주 잠깐 나가서 호텔 정원을 둘러보고 오겠다고 우겼다.

그렇게 나는 호텔 로비를 나가 정원을 지난 다음 정문까지 내처 나갔다. 예루살렘 외곽인 듯한 우리 특급 호텔 주변은 꽤 멀리까지 허허벌판이었다. 경작을 멈춘 밭 같은 느낌? 하지만 어쩐 일인지 저 멀리에 커피 스탠드가 이른 아침부터 불빛을 반짝이며 음악을 틀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호텔 손님들을 상대로 장사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유대인이라기보다는 그냥 백인처럼 보이는 중년 남자가 커피 스탠드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나를 보더니 매우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잘 상대를 안 해주려 했다.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일부러 모른 척, 돈을 내밀며 커피를 달라고 했다. 남자는 마지못한 듯 종이컵에 커피를 담아 내밀었고, 나는 기다리는 동안 호텔 쪽을 힐끔 힐끔 돌아보았다. 마치 나 저기서 나왔어라고 알리려는 것처럼.

 

그러고 나서 한국으로 가는 길, 버스가 지나가는 도로 옆으로 호수 같은 것이 펼쳐졌다. 우리 중 몇 명이 흥분하며 가이드에게 저거 사해 아니냐고 물었다. 가이드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내려서 보고 싶다는 우리 요구를 무시하려고 했다. 하지만 신부님과 수녀님도 가세해 거세지는 요구에 결국 버스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우리 성지순례단, 혹은 패키지 관광객들은 사해 호숫가에 내려 덩어리진 소금을 만져보고 짠물에 손을 살짝 담갔다. 관광 시설이 조성된 곳은 아니어서 주변엔 아무것도 없이 땅과 하늘과 소금과 물뿐이었다.

그 이후 텔레비전에 가끔 사해에 몸을 둥둥 띄우고 신기해하는 여행자들의 모습이 등장할 때마다, 옛날 귀국을 목전에 두고 저마다 생각에 잠겨 있던, 삭막한 호숫가의 우리 일행의 모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