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 26. 18:19ㆍ일본에서 덜덜
교토는 도쿄와 앞뒤만 바꾼 글자로 나를 헷갈리게 한다. 아마 많은 사람이 그렇겠지. 아무튼 나랑 애인은 메트로폴리스 도쿄에서 5일을 보내고 나서, 애인의 친구가 역시 프로그래머로 취업해 살고 있던 전통의 도시, 교토로 향했다.
애인의 친구는 우리가 오자마자 저녁식사로 한국식 불고기 집을 데리고 갔다. 최대한 현지식을 먹어보고 싶던 우리는 좀 실망했지만, 생각해보면, 일본 쿄토의 한국식 불고기 집이라는 것도 꽤 독특한 아이템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에게는 찾아오는 친구가 별로 없었던 듯, 도쿄의 친구와는 확연히 구별될 정도로 우리를 반가워하며, 모처럼의 한국 음식과 함께 진한 향수에 젖는 듯했다.
밥을 먹고 들어간 교토의 원룸은 요코하마의 원룸보다 꽤 넓었다. 그리고 혼자 사는 남자의 방답지 않게 무척 깨끗했다. 현관 앞, 화장실 앞, 싱크대 앞에 보송보송한 연한 색 러그가 세 개나 깔려 있었을 정도니까. 그래서 그 원룸의 다른 세부 사항은 기억이 안 나나보다... 너무 깨끗해서...
집에 들어가자마자 애인의 친구는 컴퓨터를 켜고 자신의 애인과 화상 통화를 연결했다. 서울에 있을 때 우리 커플과 그들 커플은 몇번 어울린 적이 있어서 한동안 예전처럼 넷이 대화를 했다. 하지만 모니터에 대고 하는 대화에 금방 시들해진 우리 커플과 달리, 그들 커플은 한참 동안 더 애틋한 대화를 이어갔다. 둘의 다정한 모습에서 외로움과 슬픔이 배어나왔다.
셋이 나란히 이불을 깔고 잔 다음날 아침, 애인의 친구는 유부와 각종 야채가 들어간 특이한 북엇국을 끓여 주었다. 이렇게 정갈한 해장국은 처음 받아보는 듯했다.
우리가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도 한참을 더, 그들 커플은 떨어져 살다가 결국 남자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친구들과 서울에서 다시 모여서는 거의 울먹이며 "우리 다시는 해외에 나가서 살지 말자"고 했단다.
요즘도 가끔 소식을 전해 듣는데, 늘 그랬듯 그는 다정하고 가정적인 아버지로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세속적 의미에서는 어려움이 좀 있는 것 같지만, 난 그들 가족을 생각하면 늘 유부 북엇국을 아침 식탁에 조용히 퍼놓던 그 남자가 생각 나면서, 별 걱정 해주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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