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은 처음 2, 독일에서 한국 도서전

2019. 12. 4. 18:09유럽의 추억

드디어 전시가 개막하고, 이제 일주일 동안 순번을 나누어 전시장 지키기와 관리만 하면 되는데, 사고가 터졌다. 자원봉사자들이 머물던 게스트하우스에서 한밤중에 불이 난 것이다. 사실 우리 직원들 숙소보다 한 급 낮은 자원봉사자 숙소 때문에, 그리로 보내진 직원들이 불만을 표현했던 차였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자원봉사자 처지가 되었던 우리 회사 직원들은 무척 놀라고 무서웠을 것이다. 새벽녘에 짐도 못 챙긴 채 뛰쳐나왔다가, 다른 직원들이 있는 제대로 된 호텔로 이동한 자원봉사자 처지의 직원들은 아늑한 방에서 나와 마주한 채 불같이 화를 냈다. 고소 운운하는 말까지 나왔다. 자기들이 그 숙소에 묵게 된 과정 자체가 불법이었으니까 말이다.

 

새로 호텔방을 배정해주고 하루 쉬면서 옷가지를 사도록 돈을 주고 해서 일단은 달래 놓았다. 당장 행사가 시작되는 와중이라 더 이상의 여력은 없었다. 다행히 하루하루 지나며 화가 많이 풀린 듯했고 다시 고소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2주가 지나고 전시회가 끝난 후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하루의 휴일이 주어졌다. 그 동안 우리와 같은 호텔에 묵으며 아침식사 때마다 마주친 불필요 직원들은, 그날 아침에는 더 갈 곳도 없고 피곤하니까 호텔에서 하루 종일 쉬어야겠다고 재잘대고 있었다.

 

박람회는 일요일까지 하기 마련이니까, 우리의 휴일은 월요일이었다. 시내의 많은 박물관 미술관들은 모두 문을 닫았을 테니, 딱히 어디로 관광을 가야 할지 몰랐던 우리 필요 직원들은 다같이 숙소를 나서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걸었다. 그러다가 가까운 곳에 목욕탕이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남녀 혼탕으로 악명(?) 높은 독일 목욕탕에 대해서는 독일통 직원들이 설명해주었다. 자기들도 독일에 살던 어릴 시절 부모님과 가끔 갔으며, 익숙해지면 아무렇지도 않다고.

우리는 남녀가 시간대를 나눠서 체험해보기로 했다. 우리끼리 혼탕을 할 수는 절대로 없으니까 말이다. 아예 안 간다는 사람도 많아서 나는 결국 혼자 저녁 때 목욕탕에 가게 됐다. 한참 걸려 생소한 입장 절차를 밟았다. 안에 들어가면 혼탕이라는데, 옷을 벗는 곳은 일일이 개별 부스가 돼 있었다. 커다란 목욕 타월을 몸에 단단히 두르고 드디어 목욕장으로 들어섰다.

 

과연 남녀노소가 모두 옷을 벗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개중에는 나처럼 몸에 타월을 두른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러지 않았다. 그냥 한 손에 타월을 들거나 한쪽 어깨에 걸친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타월을 목에 걸고 늘어뜨려, 양 가슴은 가린 채 몸의 중앙부는 고스란히 노출한 사람들이 가장 눈에 띄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움츠린 채 빠른 속도로 샤워부스로 향했다. 개별 부스에서 등만 노출한 채 천천히 샤워를 하고 다시 타월을 몸에 꽁꽁 싼 다음 거대한 공동탕으로 나갔다. 거의 웬만한 수영장 크기의 온탕이었다. 가장자리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잽싸게 타월을 벗고 뿌연 물속으로 들어갔다. 집에 욕조가 없는 사람, 혹은 더운 물을 절약하려는 사람, 혹은 다함께 옷을 벗는 해방감을 즐기려는 사람 등이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고, 그중에 나처럼 서양의 야만 문화를 체험해보려는 동양인이 일부 끼어들어 있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날, 원래 우리 회사의 몫이었던 전시물 제작을 가로챘던 업체의 대표가 먼저 귀국하면서 나에게 부탁한 것이 있었다.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계였던 PDA 100개를 한국으로 직접 가져와 달라고. 추가 짐에 따른 항공비 부담과 택시비를 주겠다는 당연한 제안과 함께, 수고료로 PDA 한 대를 주겠다고 했다. 그 후 애플 스마트폰이 나오며 무용지물이 된 윈도우 기반의 PDA는 그 당시에도 그다지 쓸모가 없는 편이었지만 하나쯤 공짜로 갖고 싶긴 했다.

 

작은 기계 100대가 든 철제 보호 케이스를 끙끙거리며 독일에서 강남구 신사동까지 가지고 갔더니, 라이벌 업체 대표는 케이스를 넘겨받으며 사례품은 나중에 주겠다는 말과 함께 우리를 그냥 보냈다. 그 후로도 한참 동안 연락이 없어 어느 날 전화를 했더니, 그는 나에게 왜 진작 연락을 안 했느냐며, 연락이 없어서 그냥 다 처분해 버렸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그래, 중고품도 50만원은 넘는 걸 주기가 아까웠겠지. 그냥 부탁하기는 민망했을 테고. 차후에 '네가 연락을 안 한 탓' 정도 할 수 있는 뻔뻔함이 있으면 50만원 정도는 알뜰하게 절약할 수 있는 거다.

 

*이 전시기획사 때의 이야기 전체는 여기서 https://steemit.com/kr/@uchatn/1-aesthetic-and-historic-van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