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4. 18:04ㆍ유럽의 추억
20대 후반에 일본을 길게 다녀온 후, 30대 중반이 되도록 해외여행을 한 번도 못 갔다. 그 나이 또래가 많이 그랬듯 워커홀릭으로 살던 시절이었다. 주중에는 (술자리를 포함해서) 밤 12시 이전에 집에 들어오는 일이 없었고 주말에는 하루 종일 자거나 멍하니 티비를 봤다. 휴가철이 되어도 3일 이상 휴가를 내기가 힘드니, 국내 바닷가에 잠깐 다녀오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자 참다못한 애인은 혼자 장기 휴가(그래봤자 일주일)를 내고 해외여행을 나갔다오기도 했다. 그 나이 또래가 슬슬 그러기 시작했듯이 말이다.
그러다가 내가 일하던 전시기획사에서 독일에서 열리는 대규모 전시회(박람회)를 기획하게 됐다. 반 년 이상의 준비끝에 스무 명 정도의 직원들이 프랑크푸르트로 2주 동안 출장을 가게 됐다.
직장에서 해외 출장을 자주 다니며 여행 산문집을 내는 사람도 있던데, 나는 이때가 처음이자 거의 마지막 출장이었다. 나뿐 아니라 다들 그랬다. 그리고 ‘출장을 보내달라는’ 로비도 꽤 들어왔다. 즉 출장을 갈 필요가 없는 직원들이 이 전시회에서의, 이 회사에서의 자신의 기여도를 들먹이며 성과급 비슷하게 출장행 티켓을 요구했다.
그냥 회삿돈으로 출장을 가는 거라 여겼을지 모르지만 상황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우리 회사에서는 출장 필요 인원을 산정해서 ‘갑’ 회사(발주사)로부터 경비를 결재 받게 돼 있었고, 우리 사장은 그냥 공돈을 지출하며 그들을 외국에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즉, 불필요 인원을 출장에 포함시키면, 실제 일을 해야 하는 인원 일부는 출장에서 제외되어 현지 업무에 차질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진짜 차질이 생길 정도는 아니었다. 현지에서 2일을 일하고 1일은 다른 전시회 견학을 할 수도 있기에 충분한 출장 인원을 산정했는데, 불필요 인원들이 가면 우리는 노는 날 없이 내내 일만 하다 오게 생긴 것이었다. 똑같이 고생하다가 가는 출장인데, 누구는 2주 내내 놀고 누구는 2주 내내 일만 하다니, 불공평한 처사였지만 ‘불필요 인원’들은 일을 처음 시작할 때 계약 조건이 그랬다며 요지부동이었다. 물론 모든 잘못은 사장에게 있었다. 그냥 회사 돈을 더 써서 그들의 푯값과 숙박비를 지불하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원망하며 으르렁댔다.
어쨌든 그래서 우리 ‘필요 인원’들을 다 데려갈 수가 없게 되자, 나는 당시 조직위원회에서 모집하고 있던 ‘해외 행사 자원봉사자’ 가운데 우리 직원 일부를 집어넣어달라고 부탁했다. 자원봉사자들을 위해서도 비행기표와 숙소가 나왔으니까 그랬지만, 그게 나중에 뒤통수를 치게 될 줄은 몰랐다.
우여곡절 끝에 독일에 도착해서 정신없이 전시물 설치를 하고 낮에는 밥 먹을 곳, 저녁에는 술 먹을 곳도 찾아다니며 일주일이 지났다. 아침에 못 일어난 사람, 다른 행사장에 심부름 가다가 길을 잃어버린 사람, 그런 짬짬이 뒷골목에 가서 마약을 사고 자랑하는 사람 등도 나왔지만 대체로 무사히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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