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해외 출장

2019. 3. 18. 11:25간접 여행

어린 시절 나에게 ‘해외’란 텔레비전 속이나 아빠의 출장 선물로만 존재하는 곳이었다. 

아빠는 가끔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아무래도 일로 갔다기보다는 그냥 놀러 갔다오는 게 아닐까 싶었다. 아빠의 출장 사진을 보면, 중년의 남자들이 관광지 앞에서 일렬로 늘어선 모습뿐이었으니까.

아빠는 외국에 다녀오면 늘 선물을 사가지고 왔다. 엄마를 위한 선물은 주로 옷이었고 우리 선물은 거의 인형이었다. 그냥 바비돌, 옛날 말로 ‘마론인형’을 사가지고 올 때가 대부분이었지만, 한 번은 2층짜리 인형의 집 세트를 사가지고 와서, 우리 자매는 몹시 신이 났더랬다. 

한 번은 남미를 다녀와서 기괴한 사진집을 잔뜩 사왔다. 남아메리카 원주민들, 그때 말로 ‘토인’들의 무시무시한 모습을 찍은 총천연색 사진집이었는데, 나는 왠지 가끔 그것을 꺼내보며, 그들의 벌거벗은 몸과 그 몸에 칠해진 색색의 흙, 손에 들고 있는 날카로운 무기들을 훔쳐보며 부르르 떨었다.

*아빠가 해외 여행에서 사왔던 엄마의 옷에 대해서는 다른 블로그에 썼으니 참고하시길.

https://ourmask.tistory.com/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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