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를 찾아서(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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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 출장 2
(앞 글에 이어서) 어제 마카오 들어올 때 비행기에서 우연히 본 홍콩의 영자 정론지,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의 기사까지 인용해서 심도 있는 기사를 쓰고 싶었다. 마카오의 카지노 기업가들이 환경까지 해치고 있다는 요지였는데, 사실 카지노든 뭐든 건설은 거의 가장 환경에 좋지 않겠지만 카지노에 대한 인식이 여러 가지로 안 좋으니 밉보는 게 아닐까 싶긴 했다. 그런 시선을 의식한 듯, 어제 기자 회견 장에서 프리젠터는 새 호텔의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거대하게 펼쳐지는 로비의 도박장에 대한 소개는 전혀 하지 않고, 자신들이 그리는 마카오의 새로운 미래로 '쇼핑과 공연, 그리고 convention(국제 회의) 산업'을 내세웠다. 거대한 호텔 내부를 둘러보니 과연 다른 건 몰라도 쇼핑은, 그것도 명품 쇼핑은 눈 돌..
2020.07.23 -
마카오 출장 1
지난번 퇴사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거의 3년 동안, 여행이든 출장이든 해외에 다녀오지 못했다. 나갈 돈도 없었지만 끔찍한 직장들을 연이어 두 군데를 다니는 동안 없던 불면증과 알콜 장애 및 (나중에 발견된) 지병마저 생길 지경으로, 삶에 여유가 전혀 없었다. 그러다가 마지막 직장에 들어가며 한숨을 좀 돌렸다. 비정규직인 데다가 명목상은 일주일에 이틀만 출근하면 되는 조건이었다. 일간지에서 발행하는 주말판 신문의 문화 섹션 객원 기자 자리였다. 요즘은 김영란법 때문에 어떨지 모르겠지만 10년전만 해도 기자들은 출장, 혹은 ‘공짜 해외 여행’을 갈 기회가 많았다. 신문사에서 자기네 돈을 들여 직원들을 해외 출장 보내는 게 아니라, 기업이나 기관에서 자신들의 상품이나 실적을 홍보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들여 ..
2020.07.06 -
냄새나는 과일과 밀림 속 사원, 캄보디아 2
동생의 프놈펜 집은 번화가에 가까운 넓은 거리에 있었다. 넓은 거리라고 해봤자, 오토바이들이 점령한 길가를 합쳐 간신히 4차선인 도로였지만 말이다. 1층은 상점이었고 그 위는 주택인, 유럽식 아파트였고 동생의 집은 3층이었다. 커다란 통창 밖으로 가로수가 우거져 아래 거리를 살짝 가려주었다. 비교적 고급이라 그런지 월세가 30만원 가까이 된다고 했다. 작은 방 둘에 거실과 주방이 분리된 아담한 크기였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 집에는 외부를 향해 뚫린 구멍이 있었다. 추운 겨울이 있는 우리나라에는 구멍이 뚫린 건물이란 주차장 빌딩 밖에 없지만, 비바람만 적당히 막으면 되는 열대 지방 주택은 아예 환기 구멍을 '영구히' 열어놓는 모양이었다. 지붕 바로 아래 벽 위쪽에 약간의 장식이 가미된 주먹만 한 구멍이 두..
2020.03.19 -
저개발국의 외국인, 캄보디아 1
나에게는 한 살 차이가 나는 여동생이 있다. 어릴 때는 사이가 안 좋았고 어른이 되어서는 친하게 지낸 적도 있었다. 어쨌거나 그녀는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타인 중 하나였으니까 그만큼 쌓인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내 인생의 어느 시점까지는 그녀와 같이 간 해외여행이 가장 길었다.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이 같이 다닌 여행이 꽤많았고 성인이 되어서도 우리 둘이 긴 해외여행을 두 번이나 다녀왔으니까. 연년생 자매의 사이란 어때야 하는 걸까? 우리 자매의 사이를 설명할 여러가지 표현이 있겠지만 나는 다음과 같이 얘기할 때가 가끔 있다. 우리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같은 학교를 다녔지만 단 한 번도 등하교를 같이 한 적이 없었다고. 동생과 함께했던 첫 유럽여행 때, 2주가 채 안 되..
2020.01.28 -
드디어 남국을 찾아서, 괌
내가 처음 애인과 함께 간 ‘남국’은 괌이었다. 90년대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의 해외 신혼여행지로 처음 개발되었던 곳. 미국령이지만 사실은 일본인들이 많은 섬. 미국령이지만 미국 비자가 필요없는 곳. 그래서 얼마전 번듯한 직장을 그만두기 직전, 굳이 무리해 받아놓았던 미국 비자가 아무 소용이 없었던 미국땅. 2000년대 초반 괌으로, 5년간 사귄 애인과 첫 해외여행을 떠났다. 그 당시는 아무리 오래 사귄 사이라도, 애인과 떳떳이 여행을 떠나는 분위기가 아니었고, 우리는 주변의 누구에게도 우리의 해외여행 출발을 알리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떠나는 해외여행, 그런 게 요즘은 존재하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하다못해 우리가 그때 여행지에서 실종됐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리고 우리..
2019.06.05 -
부모와 동남아 여행
나의 부모는 나이가 꽤 들어서 결혼하고 나를 낳았다. 그래서 내가 아직 학생일 때 그만, 아버지의 환갑이 닥치고 말았다. 이제 60세는 ‘장년’이나 마찬가지라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고 해도, 그냥 지나보낼 수는 없었다. 환갑잔치까지는 아니라도, 친척들을 모아 식사라도 해야 했다. 학생이긴 해도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했기 때문에 아주 돈이 없지는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곤란했던 것 같다. 돈도 있는데, 안 쓰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홀랑 쓰자니 아깝고. ㅠㅜ 고민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그냥 당신이 돈을 댈 테니 같이 해외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 넷은 처음으로 가족 해외여행을 떠났다. 아버지가 직접 알아보고 예약을 했기 때문에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저가 패키지 여행이었던 것 같..
2019.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