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19. 21:26ㆍ호주가 이상해
그러고 보니 그 동안 나는 유럽, 아프리카(이집트), 아시아(일본, 캄보디아)에 걸쳐 무려 세 대륙을 가보았고 아메리카 대륙은 괌으로 살짝 맛을 봤다고 우기면, 이제 호주만 가면 5대륙 완전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싸… 그렇게 해서 순전히 대륙 구색 맞추기를 위해 호주 여행을 계획했다.
호주에는 친구(현경)의 친구(지원)가 살고 있었다. 현경을 꼬셨다. 지원이를 만나러 같이 가보자고. 현경은 망설였다. 해외 여행은 가고 싶지만, 호주도 좋지만, 지원을 그다지 만나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게다가 지원은 시드니에 살고 있었다. 그때 호주에서는 한창 맬버른이 핫하고 힙한 도시로 떠오르고 있었는데, 아무리 돛단배 모양 오페라 하우스가 멋지다고 해도, 시드니는 너무 구리지 않냐는 요즘 중론이 있었다.
현경에게 지원이 얘기를 가끔 듣곤 했다. 죄다 코믹한 것들이었다. 만나본 적은 없지만 듣고 상상한 지원은 천방지축의 미친년이었다. 재미있을 것 같고, 만나보고 싶었다.
사실 지원은 시드니에서 무역업을 하는 열 살 많은 애인한테 얹혀살고 있었다. 부유하게 태어나 사업 벌이길 좋아하고 똑똑했던 지원에겐 썩 좋은 상황은 아니었기에, 현경은 더 망설였지만, 결국 가보자고 허락했다.
지원은 애인과 함께 공항에 마중 나왔다. 애인은 생각보다도 많이, 나이가 많아 보여 당황스러웠다. 나이차가 열 살 이상인 거 아닐까? 저런 사람을 애인으로 삼다니, 역시 지원은 호탕한 사람이었다. 그런 애인과 손을 꼭 잡고 당당히 우리를 맞이하는 지원을 보고 나와 현경은 꽤 당황한 낯빛을 했을 것이다.
우리는 지원의 차, 아니 지원의 애인의 차를 타고 곧장 숙소로 갔다. 거기는 시드니에서도 배낭여행객이 주로 모이는 중심가의 허름한 유스호스텔이었다. 30대인 우리가 그런 숙소를 선택한 걸 보고 이번에는 지원이 몹시 당황하는 듯했다. 비록 2인실이긴 했지만 짐을 들어준다며 같이 올라온 지원은 참담한 표정까지 지었다. “야, 아.. 씨.. 미안하다. 내가 우리집에 재워줬어야 하는데..”


우리는 지원을 달래며, 걱정하지 말라고, 여기는 하루만 예약한 거고 다음 날부턴 우리가 꼭 가고 싶었던 ‘다른 유스호스텔’에 묵을 거라고 위로(?)했다. 그곳은 사실, 웬만한 호텔 숙박료와 맞먹는 시드니에서 제일 힙한 유스호스텔이었는데, 그런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아무튼 나와 현경은 오랜만의 해외 여행에 희희낙락하며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시드니의 커피숍으로 진출했다. 바야흐로 한국에서도 카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우리는 인근에서 예쁜 카페를 찾아내곤 그 유명한 플랫 화이트를 시킨 다음 랩톱을 켰다.


나는 인터넷에 접속하고 서울의 상사와 채팅을 시작했다. “잘 도착했습니다! 뭐 시키실 일은…” 물론 상사는 아무 일 없으니 잘 놀다 오라며 한 마디 하고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비록 노마드족까지는 아니었어도, 내가 랩톱을 들고 카페를 다니기 시작한 최초의 해외 여행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휴가 여행이기도 했다. 이후로 나는 직장을 다니지 않고 프리랜서로 살았으니까. ‘휴가’라는 게 따로 없는 삶을 살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부지런히 관광지를 찾아다니기는커녕 주로 힙한 동네를 찾아 어슬렁거리며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해외 여행의 시절이 펼쳐질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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