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1. 15:30ㆍ동남아를 찾아서
베이징 여행을 생각하면 나는 우선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가 떠오른다. 여러 곳에 대한 여행기를 모은 그 책의 글들 중에서도, 방구석 여행기나 마찬가지였던 그의 베이징 체류기 말이다. 그는 서울의 번잡스런 생활을 떠나 베이징에서 한 달 간 집필에 몰두할 예정이라고 주변에 호기롭게 알린 후, 교통편과 숙소를 세심하게 조율하고 떠났다고 한다. 그런데 베이징 공항에 도착 즉시 친절한 보안원에게 안내를 받아 어디론가 한참 끌려간 후 다시 비행기에 태워져 인천 공항으로 돌아왔다. 중국 비자를 받지 않고 여권만 들고 갔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서울의 집으로 돌아와 아무에게도 귀국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방구석에 틀어박혀 한 달을 보냈다고 썼다. 너무 쪽팔려서 집 밖을 나갈 수가 없었다나.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나 의심스럽지만,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을 친숙하게 여긴다는 사실의 반증이 아닐까 싶다. 나도 예전에 베이징 여행을 계획할 당시, ‘비자’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어 화들짝 놀랐더랬다. “비자 면제국이 아니라고? 여권만으로는 안 된다고?” 심지어 비자 발급 시간과 비용도 꽤 들었다. 아, 그래도 명색(?)이 공산 국가니까 그럴 수 있나? 하면서 수긍은 했지만, 형식적인 비자 발급이라는 관문만 넘으면 여행에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하고 별 조심성 없이 여행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것이 엄청난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어릴 때 홍콩으로 패키지여행은 가봤고 얼마 전 마카오로 출장을 가봤지만 중국 본토(!)로의 여행은 처음이었다. 그러면서 자유 여행으로, 별 준비도 없이 베이징을 갈 생각을 하다니,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안이했다. 그리고 호되게 당한 나는 다시는 중국 여행을 가지 않았다. 앞으로도 갈 생각이 없다.
그때 나의 베이징 여행은 겨우 3박4일 일정이었다. 바로 옆나라, 그것도 너무나 친숙한 나라의 수도이다 보니 베이징이 낯선 미지의 세계라는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았다. 역사도 다 알고, 지리도 숱하게 들어왔고, 심지어 한자까지 알지 않는가? 말은 안 통하겠지만, 글을 대강 읽을 수 있잖아? 필담이라도 할 수 있겠지.
당시 내가 재밌게 읽은 베이징 음식 문화에 대한 책이 있었는데, 그 책을 보면서 이번 여행은 맛집 탐방을 위주로 해야겠다며 호기롭게 동선을 짰다. 단 한 곳도 갈 수 없으리라는 예상은 꿈에도 못한 채 말이다.
때는 8월이었다. 공항에서 베이징 시내로 들어와 지하철역에서 올라온 나를 처음 맞이한 건 눈앞에 자욱한 수증기였다. 분명이 차들이 다니는 도로 옆 인도인데, 목욕탕 안으로 들어온 듯 모든 것이 뿌예서 채 2미터 앞의 건물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숨통이 막힐 듯한 열기에 둘러싸였지만 사방의 시야가 흐릿하니 긴장이 되면서 소름이 돋았다. 그러고 보니 베이징에 공기 오염이 심하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본 듯했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스모그인가 싶었다. 아직은 서울에도 미세 먼지가 심하다는 자각이 없던 시절이었다. 다행히 지하철 역 바로 앞의 숙소를 정한 덕분에 어찌어찌 호텔로 들어가 무사히 짐을 풀 수 있었다.
심각한 스모그와 더위 때문에 호텔 밖에 나가기가 걱정됐지만 저녁은 먹어야 할 듯했다. 멀리 가는 대신, 호텔 근처 식당을 알아보기로 했다. 안개를 조금씩 헤치고 주변을 탐색하다보니 꽤 번듯하고 큰 식당이 보였다. 인테리어 삼아 구운 오리들이 주렁주렁 걸려 있는 곳이었다. 저게 말로만 듣던 북경 오리구나. 딱히 맛집을 찾아온 건 아니라서 걱정은 되지만, 이렇게 번듯한 집인데 설마 맛이 없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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