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 29. 17:52ㆍ동남아를 찾아서
나의 부모는 나이가 꽤 들어서 결혼하고 나를 낳았다. 그래서 내가 아직 학생일 때 그만, 아버지의 환갑이 닥치고 말았다. 이제 60세는 ‘장년’이나 마찬가지라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고 해도, 그냥 지나보낼 수는 없었다. 환갑잔치까지는 아니라도, 친척들을 모아 식사라도 해야 했다.
학생이긴 해도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했기 때문에 아주 돈이 없지는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곤란했던 것 같다. 돈도 있는데, 안 쓰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홀랑 쓰자니 아깝고. ㅠㅜ 고민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그냥 당신이 돈을 댈 테니 같이 해외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 넷은 처음으로 가족 해외여행을 떠났다. 아버지가 직접 알아보고 예약을 했기 때문에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저가 패키지 여행이었던 것 같다. 홍콩에서 하루 자고 방콕에서 이틀을 자면서 근처 바닷가인 파타야까지 다녀오는 3박 4일 일정이었다.
가격도 저렴하고 일정은 빡빡하고 호텔은 특급이며 음식은 요상한 한식을 주로 먹는 패키지 여행. 새벽 비행기를 타고 호텔에 새벽 1시에 도착해 바로 그날 새벽 3시나 4시쯤 일어나 대형 버스에 실린 다음 정신없이 자다보면 이름은 들어본 듯도 한 유명 관광지에 도착한다. 한 시간 정도 각자 사진을 찍은 다음, 다시 대형 버스를 타고 녹음기를 튼 듯한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서너 시간을 이동한다.
차창 밖으로 이국적인 풍경을 감상하거나 캠프에서 코끼리를 만져보고 패러글라이딩도 하는 등 새로운 경험을 했지만, 사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끔찍했던 순간들이다. 방콕의 교통 정체 때문에 세 시간 동안 한 자리에 서 있던 버스에서 내려 길가에서 서성거렸던 기억이랑, 어느 관광 상점에서 아무도 물건을 사지 않아 두 시간 동안 갇혀 있던 일 같은 것들 말이다.
얼마 전에 젊은 친구가 부모님을 모시고 중국으로 효도 여행을 갔다온 얘기를 들었다. 다들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장가계를 다녀왔는데, 아무리 풍경이 멋지고 부모와 함께하는 뿌듯함이 있다고 해도, 열악한 환경과 힘든 일정 때문에 돌아버릴 뻔했다고 했다. ‘뭉쳐야 뜬다’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호평을 받고 있는 세상인데, 요즘도 여전히 열악한 패키지 관광이 있나 의아했다.
이렇게 부모를 모시고 해외 효도 여행을 함께 가는 건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풍습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당연한 의무 비슷한 게 돼버린 것 같은데 말이다. 그래도 아랍계 사람들 가운데는 가끔 노부모를 모시고 같이 여행을 다니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난다.
그런데 요즘 청년들은 이전 세대보다 부모와의 관계가 훨씬 친밀해진 것 같다. 그러다보니 부모와의 여행도 ‘모시는’ 관광이 아니라 그야말로 동반자로서, 친구처럼 함께 여행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예전에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라는 책도 화제가 되었지만, 아예 또래와의 여행보다도 부모와의 여행을 더 선호하는 모습도 가끔 보게 된다.
물론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부모와 여행을 가면 더 풍요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겠지만, ‘세대 차이’라는 말은 아무래도 산업화 이전 세대와 이후 세대만을 가르는 문제가 되고 있는 느낌이다. 아마도 ‘친밀감’은 지적 수준과도 밀접한 연관이 돼 있을 테고, 그것은 단지 개인의 차이만이 아니라 특정 세대 집단이 자라온 시대 환경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동남아를 찾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카오 출장 2 (0) | 2020.07.23 |
---|---|
마카오 출장 1 (0) | 2020.07.06 |
냄새나는 과일과 밀림 속 사원, 캄보디아 2 (0) | 2020.03.19 |
저개발국의 외국인, 캄보디아 1 (0) | 2020.01.28 |
드디어 남국을 찾아서, 괌 (0) | 2019.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