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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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남국을 찾아서, 괌
내가 처음 애인과 함께 간 ‘남국’은 괌이었다. 90년대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의 해외 신혼여행지로 처음 개발되었던 곳. 미국령이지만 사실은 일본인들이 많은 섬. 미국령이지만 미국 비자가 필요없는 곳. 그래서 얼마전 번듯한 직장을 그만두기 직전, 굳이 무리해 받아놓았던 미국 비자가 아무 소용이 없었던 미국땅. 2000년대 초반 괌으로, 5년간 사귄 애인과 첫 해외여행을 떠났다. 그 당시는 아무리 오래 사귄 사이라도, 애인과 떳떳이 여행을 떠나는 분위기가 아니었고, 우리는 주변의 누구에게도 우리의 해외여행 출발을 알리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떠나는 해외여행, 그런 게 요즘은 존재하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하다못해 우리가 그때 여행지에서 실종됐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리고 우리..
2019.06.05 -
성지순례 3 이스라엘의 국경과 사해
얼마전 텔레비전에서 ‘선을 넘는 녀석들’이라는 여행 프로그램을 봤다. 연예인들이 역사 선생님과 함께 세계의 국경들을 실제로 넘어본다는 내용이었다. 그중 당연히 이스라엘 국경도 포함이 돼 있었다. 프로그램에서는 요르단과 이스라엘 사이 육로 국경을 차로 넘었는데, 그 살풍경을 보자, 오래전 내가 부모와 함께 성지순례를 가서 경험했던 이스라엘의 입국장 기억이 확 되살아났다. 우리는 비행기로 이스라엘에 들어갔다. 비행기에서부터 가이드가 여러 가지 주의를 많이 주었다. 기본적으로, 절대 삐딱한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되고 묻는 말에 고분고분 대답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 사람들 사이 갈등이 심하고 목숨까지 위태로워지는 장소에 살고 있거나 그런 곳으로 여행을 갔다면 삐딱한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
2019.05.21 -
성지순례 1 이집트의 무덤집들과 시나이 산
글쓰기 모임을 같이 하는 동료들이 '여행은 그런 것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블로그를 하기로 했단다. 그러고 보니 나도 비슷한 주제로 여행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거의 20년 전, 나 대학원생 때 부모와 두 번째로 함께 간 해외 여행을 떠올려본다. 그건 그냥 해외 여행이 아니라 '성지순례'였다. '부모와 함께 한 여행'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예상 가능한 모습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성지순례' 하면 떠오르는 고정관념과는 거리가 먼 여행이었다. 당시 종교에서 멀어져가던 나에게는 좀 다른 의미의 여행이었으니까. 그보다도 5년 전, 아버지 환갑 때 3박4일 동남아 패키지 여행을 다녀온 후, 엄마가 두 번째 패키지 여행을 가자고 했다. 20대 초반 허리까지 내려왔던 내 머리칼은 20대..
2019.04.23 -
부모와 동남아 여행
나의 부모는 나이가 꽤 들어서 결혼하고 나를 낳았다. 그래서 내가 아직 학생일 때 그만, 아버지의 환갑이 닥치고 말았다. 이제 60세는 ‘장년’이나 마찬가지라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고 해도, 그냥 지나보낼 수는 없었다. 환갑잔치까지는 아니라도, 친척들을 모아 식사라도 해야 했다. 학생이긴 해도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했기 때문에 아주 돈이 없지는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곤란했던 것 같다. 돈도 있는데, 안 쓰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홀랑 쓰자니 아깝고. ㅠㅜ 고민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그냥 당신이 돈을 댈 테니 같이 해외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 넷은 처음으로 가족 해외여행을 떠났다. 아버지가 직접 알아보고 예약을 했기 때문에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저가 패키지 여행이었던 것 같..
2019.03.29 -
배낭족 5 부다페스트의 첼리스트와 파리의 사수생
오래전 떠났던 유럽 배낭 여행은 원래 두 달 예정이었다. 비행기 표를 그렇게 끊었다. 하지만 유럽에서 이리저리 헤매다닌 지 한 달이 되어가자, 나는 이십대 초반의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육체적으로 기진맥진하고 정신적으로도 너덜너덜해졌다. 나는 널부러져 지내기 시작했다. 게다가 부다페스트에서, 우연인지 동유럽은 원래 그랬던 건지, 아주 값싸고 괜찮은 숙소를 얻었다. 명성대로 인형 같은 외모의 헝가리 젊은이들이, 방학 동안 텅빈 학교 교실에 책상들을 붙이고 그 위에 매트리스를 올려 배낭 여행자들에게 내주면서 하루에 만 원도 안 되는 돈을 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공동 화장실 시설이 나쁘지도 않았다. 개혁개방 초기, 자본주의가 밀려들기 시작한 초반의 동유럽이었어도 샤워실까지 있는 고등학교 시설은 한국보다 훨씬 좋..
2019.03.08 -
배낭족 4 밤기차와 동반자
그 다음부터는 여행 일정이 뒤죽박죽이었다. 숙소를 안 잡고 계속 밤기차를 탔기 때문이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숙박비를 많이 낭비(?)했기 때문에, 정액권인 유레일 패스를 이용해 당분간 기차에서 취침을 해야 했다. 밤기차의 침대칸을 숙소로 삼기 위해서는 잠들기 직전에 기차를 타서 깨어난 직후에 내릴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게 좋았다. 유럽을 상하로 이동해서는 그 거리가 제대로 안 나오고 북유럽은 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좌우, 즉 동서로 이동을 해야 했다. 오늘은 스페인, 내일은 헝가리, 모레는 이탈리아, 글피는 체코, 뭐 이런 식으로 유럽 대륙을 지그재그 수놓으며 젊은 체력을 탕진했다. 그러다보면 교통의 요지를 많이 거치게 되는데, 프랑크푸르트는 다섯 번쯤 들른 것 같다. 하지만 첫날 기차역에서 역무원에게 ..
2019.03.04 -
배낭족 2 파리의 욕망이 향하는 곳
영국을 떠난 나랑 동생은 당연히 파리로 향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파리 중앙역에 내렸는데 웬 중년의 백인 남자가 한국어 손글씨가 적힌 종이를 내밀며 우리에게 곧장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좋은 방 있어요’ 나랑 동생은 놀란 눈으로 덤벼들다시피 종이를 받아들고 자세히 뜯어보았다. 남자는 서툰 영어로 자기 집에 남는 방이 있는데 싼 값에 줄 테니 따라오라고 했다. 그리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물론 공중전화를 써야 했던 시절이다. 남자가 내민 전화기 너머에서는 젊은 한국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반가움에 소리를 지르다시피 통화를 하고 나서 설명을 들은 대로 지하철을 타고 파리 교외 지역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먼 길이었다. 한 시간쯤 걸리는 듯했고, 지하철 역에 내려서도 작은 계곡 같은 곳 옆으..
2019.03.01 -
배낭족 1 영국의 자매와 고추장
슬슬 대학 생활이 싫증 날 무렵, 3학년을 마치고 휴학했다. 당시 한창 유행하던 영화 만들기 수업을 들으며 원없이 놀고 있는데 엄마가 물었다. “미국으로 6개월 어학 연수 갈래, 유럽으로 두 달 배낭 여행 갈래?” 왠일로 큰돈을 대줄 뿐 아니라 선택의 옵션까지 주겠다는 거였다. 난 당연히 두 달 유럽 배낭 여행을 선택했다. 나보다 한 살 어린 동생과 동생의 친구 한 명과 함께 영국으로 떠나기로 했다. 우리 여자 셋은 거의 자기 몸집만 한 크기의 배낭을 사고 서울의 여행사에서 왕복 항공권과 유레일 패스를 샀다. 숙박은 런던 도착 첫날 단 하루만 어느 호텔을 예약했다. 다른 정보나 그 외의 준비는 [세계를 간다]라는 두꺼운 여행책 한 권이 전부였다. 비행기 안은 담배 연기로 자욱하던 시절이었다. 7월이었지만..
2019.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