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5 동네 탐방기

2024. 9. 4. 19:38호주가 이상해

 

며칠 지나 지원이가 더 이상 우리를 끌고 다니지 않게 되자 나와 현경은 둘이서 제멋대로 동네 체험을 다니기 시작했다. 유스호스텔 근처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와인 한잔을 들고 동네 (영어) 연극을 보다가 정신없이 졸기도 했고 항구의 컨벤션 센터에서 LG 기술로 만들었다고 크게 써진 아이맥스 영화를 보기도 했다.

 

또 내가 좋아하는 시장 탐방도 여러 군데 갔다. 어시장에서 랍스타를 먹고 부촌의 슈퍼마켓에 가서 농산물과 향신료 코너도 한참 구경했다. 이런 것도 이때부터 시작된 해외여행의 주패턴이었다. 그 도시에서 뜨는(?) 동네를 알아내서 발길 닿는 대로 이리저리 걷다가 슈퍼와 상점들을 들어가보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동네에서 엄청 큰 체육관을 구경하게 됐다. 어느 정도는 축소 규모이긴 하나, 야구장 축구장 농구장 등 스포츠 시설을 한꺼번에, 주택가 한가운데 커다란 부지에 오밀조밀 욱여넣은 독특한 구조 때문에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구경했다. 저녁에는 온동네 사람들이 다 여기 와서 체육 활동으로 퇴근 후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닌가 싶었다. 유니폼도 꽤 갖춰 입고 말이다.

근처에는 예의 그 도 몇 군데 있어서 운동 하고 나오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먼저 들어가 맥주와 피자를 주문했다. 근데 피자 메뉴가 이상했다. 캥거루 피자, 에뮤 피자, 크로커다일 피자 등이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한참 의논하다가 그냥 이름만 그렇게 붙인 거겠지 하면서 캥거루 피자와 에뮤 피자를 하나씩 시켰다.

 

주문을 마치고 나서 메뉴를 수첩에 적는 웨이터를 지켜보다가 나는 충동적으로 물었다. “이게 진짜 캥거루와 에뮤는 아니죠?” 그러자 놀랍게도 금발의 젊은이가 하얀 뺨을 확 붉혔다. 귀까지 빨개지는 게 보였다. 하지만 금세 수습하고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진짜 캥거루와 에뮤 고기의 맛있는 부위를 특제 소스로 조리해서 얹은 어쩌고하는 프로다운 설명을 길게 늘어놓았다.

 

전혀 들리지 않던 호주 영어가 일주일쯤 지나자 그래도 조금씩 파악되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우리는 경악해서 웨이터를 쳐다보았지만 주문을 바꾸지는 않았다. 요리는 금방 나왔고 우리는 앞에 놓인 피자를 약 5분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정말로 보통의 피자 위에 커다란 고기 조각들이 대여섯 개씩 놓여 있었다. 소고기와 비슷하게도 보였다. 한 점 들고 먹어 보아도 역시 소고기랑 비슷했지만 뭔가 확실히 다른 느낌이긴 했다. 우리는 나온 음식을 5분의 1 정도만 먹다가 도망치듯 펍을 나왔다. 평소 음식을 남기지 않는 편이었고 또 음식점에도 미안했지만 도저히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며 직장 동료들의 선물로 캥거루 육포와 악어 육포를 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코알라 육포는 없었다. 선물을 받은 동료들은 육포를 보고 처음에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지만 캥거루와 악어 고기라는 것을 알려주자 질겁을 했다. 그리고 곧 회사 곳곳으로 흩어져 사람들에게 육포를 나눠주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방금 니가 먹은 게 캥거루야!” 그렇게 해서 하루 정도 재미있게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