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3 유스호스텔의 중년

2022. 6. 8. 17:48호주가 이상해

나이 들어 유스호스텔에 묶는 건 특별한 경험이다. 젊은이들의 열기를 회춘약 먹듯 빨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중년인 내가 요즘 가는 호스텔들은 청춘의 공간이라고만 하기엔 약간의 무리가 있다.

시드니에서 묶던 유스호스텔도 그랬다. 비쌌으니까. 4인실이나 6인실의 침대 하나를 하룻밤에 5만원이나 주고 묵을 젊은이는 많지 않다. 환율인지 생활수준인지의 이득을 보는 북구의 젊은이들이라면 또 몰라도. 어쨌든 그곳은 인기 폭발이었고 한달전에 예약을 했음에도 나는 이틀을 다른 숙소에서 보내고 나서야 그곳으로 옮길 수 있었다. 가보니 유색인은 거의 없었고 온통 길쭉한 금발들뿐이었다.

칙칙한 호텔에 있다가 사방에 세련된 디자인의 그래픽과 문구들이 씌어 있으며 멋진 가구와 주방용품을 세심하게 비치한 그곳에 짐을 풀고 나자 비로소 호주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비록 주방에서 파티를 벌이던 젊은이들에게 소외돼 밖으로 나와야 했지만.


비싼 유스호스텔은 주변 환경도 훨씬 싱그러웠다. 밖으로 산책을 나가자 그제야 도시 주변 나무들에서 뿜어나오는 희한한 냄새가 본격적으로 느껴지는 듯했다. 알고 보니 그게 바로 유칼립투스 나무였다. 코알라의 주식으로, 그 귀여운 동물을, 눈에 벌겋게 핏발이 서고 하루 종일 잠자게 만든다는 휘발성 마취 성분의 향기였다.

또 하나 눈에 들어온 식물들의 풍경은 고사리였다. 알고 보니 호주 대륙은 또한 고사리들의 땅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봄에 비죽 나온 싹(나물)으로나 존재하는 빈약한 생명체가 거기선 거대한 아름드리들을 이루고 있었다. 겨울이면 홀씨를 남기고 죽는 한국의 고사리들과 달리, 연중 온난한 지역의 고사리들은 수백(수천)년씩 계속 자라기 때문이다. 마치 거대한 야자나무처럼 생긴, 목질화된 홀씨식물들은 경이로웠다. 바로 저것들이 공룡이 먹다가 남겨서 오늘날 석탄과 석유가 된, 말그대로 살아있는 화석들이었다.

또 시드니 시내에는 희한하게 생긴 새들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호주 대륙은 포식자 없이, 유대류와 조류의 천국이었다던가. 머리에 긴 꽁지가 달리거나 색색의 꼬리가 달린 제법 큰 새들이 날아다니는 게 아니라 도심 거리에서 걸어다녔다. 그런데 너무 가까이 가면 가끔씩 푸드덕거리는 시늉을 하는 작태는, 나도 잘 아는 어떤 녀석들과 꼭 닮았다. 같이 간 친구는 그런 새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자꾸 나에게 물었다. “돌 던져볼까?” “돌 던지면 날아갈까?” 자연스런 본능이라 간주하긴 했으나, 나중에 현지인 친구에게 들으니 그랬다간 바로 유치장 간다고 했다. 호주는 자연보호에 진심인 나라라고.

공원의 나무에 매달려 있던 박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