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10. 16:53ㆍ호주가 이상해
호주의 동물들을 보러 가고 싶었다. 하지만 지원이가 자꾸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이곳저곳(카지노, 담배 필 수 있는 공원, 쇼핑몰, 중국 음식점)으로 우리를 끌고 다니면서 “동물원에는 뭐하러 가! 쓸데없이!” 하고 타박을 주었다.
그래도 코알라는 반드시 보아야 했다. 아니, 호주에 와서 코알라도 못 보고 간다는 게 말이 되는가? 캥거루는 뭐 그냥 그래도, 반드시 코알라를 만져볼 수 있게 해주는 동물원을 가야만 했다. 지원이도 결국 체념하고 (동물 보호에 좀 허술한) 가까운 소규모 동물원을 알려주었다. “거기 가면 코알라를 만지고 꼭 껴안게 해줄 거야.”
과연 허름한 동물원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교외에서 운영되며, 열악한 환경 때문에 인터넷 악평에 시달리는, 가끔 시사 고발 프로그램에도 등장하는 그런 곳 말이다. 동물 보호에 강성인 나라에도 이런 후줄근한 동물원이 있다는 게 신기했지만, 막상 들어가서 자세히 이곳저곳 들여다보니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듯했다. 작은 규모와 허술한 시설임에도 비교적 정갈하게 관리되고 있었고 동물들도 꽤 건강해 보였다. 무엇보다 일하는 사람들(사육사?)이 무척 착해보였다. 왜 그런 사람들 있잖은가, 순박하게 미소 짓는 표정을 얼굴에 장착하고 마냥 착하고 행복해 보이는 발그레한 뺨의 백인들.
일단 동물원 안에 들어서면 허리 정도 오는 높이의 캥거루들이 관람객들을 스스럼없이 맞이했다. 앞을 가로막고 빤히 쳐다보거나 먹이를 달라고 엉덩이를 앞발로 쿡쿡 찌르는 그들은 거의 개나 다름없는 동물인 듯했다. 마침 관람객은 한국인이 대부분이었는데, 시간이 좀 지나자 다들 캥거루를 매우 귀찮다는 듯 대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캥거루를 거의 본 적도 없었을 텐데, 더구나 집 안의 가축처럼 풀려 있는 캥거루를 본 적은 처음일 텐데도, 처음에만 좀 신기한 듯 관찰하다가, 곧 이리저리 피해다니기 바빴다. 흔해진다는 건 그런 건가 보다.

그밖에도 호주 대륙에서만 볼 수 있는 신기한 동물들이 차례로 나왔지만, 캥거루처럼 풀어놓은 녀석들은 없었고 다 관람객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갇혀 있었다. 제일 신기했던 동물은 웜뱃이었다. 쥐와 돼지를 결합한 듯한 외모니까 다른 대륙에도 비슷한 종들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독특했고, 사육사의 품에 안겨 있는 녀석의 등을 한 번씩 쓰다듬어볼 수 있게 해줬다.

결국 관람객들은 마지막으로 잔뜩 기대를 안고 코알라들이 사는 집(우리) 앞에 모여 섰다. 생각보다도 꽤 조그만 코알라들은 축사(?) 안에 있거나 그 옆의 나무들에 들러붙어서 자고 있었다. 잠시 기다리자, 보드랍게 바랜 머릿결에 하얀 피부가 햇빛에 발갛게 익은 여자 백인 사육사가 좀 머뭇거리더니 결심한 듯 코알라 한 마리를 나무에서 떼어냈다. 코알라는 마치 떼쓰는 아기 같은 표정으로 입을 쫙 벌리고 사지를 비틀어대며 나무에서 떨어졌지만 딱히 소리를 내지는 않았고 결국 사육사의 품에 얌전히 안겨 다시 잠들었다.
관람객들은 사육사 주위에 우르르 몰려들며 저마다 손을 뻗었다. 사육사는 손가락을 입술 위에 올리며 한 사람 당 딱 한 번씩만 코알라의 등을 쓰다듬어 보라고 말했다. 안아볼 수 있는 건 줄 알았는데, 많이 실망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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