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2 카지노와 담배 체험

2022. 4. 25. 19:20호주가 이상해


그날 저녁에는 당연한 것처럼 지원을 다시 만났다. 지원은 해외 체류 친구들이 으레 그렇듯 우리를 냅다 한국 음식점으로 데려갔고 호주 음식에 대한 기대가 없을 수밖에 없는 우리는 오히려 신기해하며 오묘한 호주산 한식을 먹었다.

그러고 나서 맥주라도 한 잔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원이 데려간 곳은 커피숍도 아니고 카지노였다. 그래, 지원이 원래 도박을 좋아한다고 들은 기억이 났다. 하지만 지원의 태도는 자기가 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도박이 금지된 한국에서 온 친구들에게 휘황한 도박장을 구경시켜주고 재미 좀 보여주겠다는 의욕이 솟는 듯했다.

이미 마카오의 휘황한 도박장들을 실컷 보고 온 나이고 카지노 정도야 할리우드 영화에도 매일 나오는 판인데 굳이 싶었지만 어쨌든 지원을 따라서 가본 도박장은 꽤 허름했다. 지원의 애인은 설치는 지원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다가, 카지노는 할일 없는 노인들이나 가서 동전 한 개씩 넣으며 심심풀이 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올 곳은 아니라는 거였다.



우리가 삼십대였으니 그다지 젊지는 않았는데, 어쨌든 그래서 우리는 다음 코스로 젊은 짓을 해보기로 했다. 시드니 시내의 어느 공원으로 가서 담배를 피우기로 한 것이다. 영화나 책에서는 많이 보았지만, 담배를 직접 피워본 건 난생 처음이었다. 하긴 이런 경험은 주로 외국에 나와서 처음 한다고, 주변의 무용담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아무튼 이런 기회를 마다할 수는 없으니 나도 꽤 적극 동의했다. 그리고 긴장이 되서 절로 표정이 굳어졌다. 공원은 꽤 황량해 보였다. 이런 데가 말로만 듣던 우범지대가 아닐까 싶었다. 지원은 우리를 사방이 탁 트인 풀밭 위에 덩그러니 놓인 벤치로 이끌었다. 이런 데가 오히려 안전하다면서 말이다.



잔뜩 긴장하고 빨아들였는데, 생각보다 맛이 순했다. 처음에만 조금 켁켁거렸고 주는 대로 받아 피웠다.

서양인들이 유일하게 간접 키스를 하며 나눠먹는 음식, 아니 기호품이 바로 담배라는 걸 이미 영화에서 많이 봐왔기 때문에, 지원과 지원의 애인과 나와 현경은 꽁초 하나를 차례대로 돌려가며 피웠다. 담배는 몹시 비싼 물건이기 때문에 혼자서 피우면, 빨아들인 연기를 내뱉고 나서 잠시 맛을 음미하는 동안 담배 혼자서도 확확 타들어간다. 그 잠시의 시간이 아까워서 담배는 꼭 한 대를 여러 명이 나눠서 피는 문화(?)가 생긴 듯하다.

하지만 별 느낌은 들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면 기분이 이상해진다던데, 난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자 지원이 정말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냐고 물었다. 난 입이 좀 마른다고, 입술을 붙였다 떼면 쩝쩝거리는 소리가 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지원은 웃으면서 그게 바로 담배의 영향이라고 알려줬다.



반면에 현경의 상태는 좀 심각했다. 담배를 피울수록 몸을 수그리더니 등을 말고서 킥킥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국 벤치에 옆으로 누웠다. 그리고 웅얼웅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다가 헤헤 웃다가 했다. 그 모습을 나랑 지원이랑 지원의 애인도 웃으며 지켜보다가, 나는 점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래도 괜찮은 걸까, 좀 일으켜서 정신을 깨게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지원에게 물었지만 지원은 클클거리며 웃기만 했다.

결국 현경의 헛소리가 심해져서, 나머지 우리가 부축하고 일어났다. 현경은 몸을 일으키자 팔까지 휘저으며 뭐라뭐라 횡설수설했지만 대체로 어리광에 가까운 가냘픈 소리들이었고, 그런 현경을 두고 지원은 “귀여운 자식…” 하며 혀를 찼다. 담배를 거의 안 핀 지원의 애인이 차를 몰아 우리를 숙소까지 무사히 데려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