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남국을 찾아서, 괌

2019. 6. 5. 10:41동남아를 찾아서

내가 처음 애인과 함께 간 ‘남국’은 괌이었다. 90년대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의 해외 신혼여행지로 처음 개발되었던 곳. 미국령이지만 사실은 일본인들이 많은 섬. 미국령이지만 미국 비자가 필요없는 곳. 그래서 ​얼마전 번듯한 직장을 그만두기 직전, 굳이 무리해 받아놓았던 미국 비자가 아무 소용이 없었던 미국땅.



2000년대 초반 괌으로, 5년간 사귄 애인과 첫 해외여행을 떠났다. 그 당시는 아무리 오래 사귄 사이라도, 애인과 떳떳이 여행을 떠나는 분위기가 아니었고, 우리는 주변의 누구에게도 우리의 해외여행 출발을 알리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떠나는 해외여행, 그런 게 요즘은 존재하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하다못해 우리가 그때 여행지에서 실종됐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리고 우리는 여행지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에게까지 우리가 결혼한 부부라고 말하기 위해 결혼햇수 등의 말을 맞추었다.

그때 괌으로 떠나며 우리가 구입한 건 이른바 호텔팩이라는 상품이었다. 여행사를 통해 비행기와 호텔을 예약하고, 가이드 한 명이 공항에서 호텔까지 차로 데려다주기로(송영 서비스) 돼 있었다. 마중나온 가이드는 중년의 남자분이었는데, 요즘 신혼부부들이 예전처럼 가이드나 운전 기사를 고용하지 않고 호텔팩만 구입해서 여행을 온다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우리는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수영장에서 노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지만, 체험 다이빙 투어 같은 것도 신청을 했다. 역시나 한국인 남성이 운영하는 다이빙숍에서 우리 호텔로 픽업을 왔다. 바닷가에 위치한 가게에서 잠깐 교육을 받고 바로 산소통과 웻슈트를 비롯한 장비를 뒤집어쓴 다음 강사의 양 손을 한 사람씩 붙잡고 물속으로 슬슬 걸어들어가는 체험이었다.



바닷가에서 걸어들어간 것 치고는 꽤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게 됐다. 애인은 무서워 파랗게 질렸지만, 난 너무 기분이 좋아서 팔다리를 마구 휘젓다가 강사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물속에서는 말을 할 수 없으니 손짓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방법을 배웠는데, 가장 기본적인 손짓은 엄지를 치켜세워서 ‘위로’, 엄지를 아래로 내려서 ‘아래로’,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서 ‘괜찮다’는 표시였다. ​가끔 물속에서 기분이 너무 좋아서 엄지를 위로 척 올리는 체험자들이 있는데, 그럴 경우 강사에 의해 물 위로 끌려 올라가게 될 거라고 했다.

다행히도 나는, 괜찮냐고 묻는 강사의 손짓 질문에 엄지와 검지가 연결된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고, 계속 물속에 있을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호텔 셔틀 버스를 타고 괌 시내로 나가 쇼핑몰을 둘러보고 할리우드플래닛이라는 테마 레스토랑을 갔다. 한 나절은 일본계 렌터카 회사에서 차를 빌려서 섬의 한적한 장소를 잠시 드라이브 하기도 했지만, 약간 겁이 나서 두어 시간 만에 얼른 돌아왔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렌터카 업체의 보증금 문제 때문에 영어 이메일을 보내며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는데, 우리가 무지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러고 나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 우리를 다시 공항까지 데려다준 한국인 여행사 사장에게 남은 달러들을 팁으로 건넸다. 우리 돈으로 5만원 가량 됐던 것 같은데, 꼭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얼마 안 되는 돈을 또 은행으로 가져가서 번거롭게 환전하기도 그렇고, 지난번 입국 때 울상을 짓던 가이드의 표정이 기억났다. ​가이드는 다시 한 번 울상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이번에는 속상하다가 아니라, 고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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