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 출장 1

2020. 7. 6. 23:59동남아를 찾아서

지난번 퇴사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거의 3년 동안, 여행이든 출장이든 해외에 다녀오지 못했다. 나갈 돈도 없었지만 끔찍한 직장들을 연이어 두 군데를 다니는 동안 없던 불면증과 알콜 장애 및 (나중에 발견된) 지병마저 생길 지경으로, 삶에 여유가 전혀 없었다. 

 

그러다가 마지막 직장에 들어가며 한숨을 좀 돌렸다. 비정규직인 데다가 명목상은 일주일에 이틀만 출근하면 되는 조건이었다. 일간지에서 발행하는 주말판 신문의 문화 섹션 객원 기자 자리였다. 

 

요즘은 김영란법 때문에 어떨지 모르겠지만 10년전만 해도 기자들은 출장, 혹은 ‘공짜 해외 여행’을 갈 기회가 많았다. 신문사에서 자기네 돈을 들여 직원들을 해외 출장 보내는 게 아니라, 기업이나 기관에서 자신들의 상품이나 실적을 홍보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들여 기자들을 해외로까지 모시는 것이었다. 그걸 junket이라고 불렀다. 원래 정킷이란 ‘시찰’이라는 뜻인데, ‘공금으로 다녀오는 유람’이라는 (비아냥의) 뜻으로 통상 쓰인다. 

 

설령 자신이 맡은 취재처(나와바리)에서 정킷 기회가 드물다 해도, 담당 기자가 일정이 안 될 때, 혹은 정킷을 너무 많이 다녀와서 눈치가 보이는 기자는 선심을 쓰듯 다른 기자들에게도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분위기였다. 

 

그런 정킷은 당연히 정기자가 가게 돼 있었지만 딱 한 번 객원이자 비정규직인 나에게도 기회가 주어졌다. 마카오에 새로 개장하는 거대 (카지노) 호텔의press conference즉 기자 회견에의 초대였다. 1박2일밖에(?) 안 되는 데다가 중국… 게다가 마카오? 여행 담당 기자는 물론 다른 바쁜 기자들도 모두 거절한 정킷이었다. ‘정킷’이 요즘에는 카지노 업계에서 ‘고객 유치를 위한 공짜 여행 경비 제공’의 뜻으로 전용되고 있다니, 더욱 희소성이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어쨌든 담당 기자는 잔뜩 생색을 내며 주관사와 나를 연결시켜 주었다. 기사도 짧게 쓰면 되니까 부담 없이 놀고 오라고 했다. 약간의 자격지심을 느끼며 공항으로 가서 쭈뼛쭈뼛 (정)기자단 틈에 끼었다. 마카오에 도착해서 어느 (정)기자와 함께 스위트룸을 배정 받았다. 스위트룸이란, 응접실 공간이 구비된 호텔방을 말하는데, 우리 방은 일반 객실보다 조금 더 커서 겨우 소파 놓을 여분이 있는 정도의 크기였지만, 그래도 스위트룸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나보다 몇년 어린 듯한 룸메이트, 다른매체의 기자와 통성명을 하는데, 왠지 내가 객원임을 알고 냉대하는 기분이 들었다. 명함에는 그냥 기자라고만 찍혀 있는데, 검색이라도 해본 것일까?

 

또 한가지, 1박 2일밖에 안 되는 일정이라 나는 평소 가지고 다니는 백팩에다 여벌옷 하나만 더 넣어왔는데 그녀는 커다란 트렁크를 끌고 왔다. 내가 의문을 표하자 그녀는 처음으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가르치듯 또박또박 말했다. “많이 다녀봤더니 1박2일이라도 출장 때는 트렁크를 가져와야 편하더라고요.” 나는 다음날 그 말이 옳음을 절감했다. 

 

그날 저녁에 기자 회견이 끝나고 나서 방에 들어와 보니, 그녀는 소파 탁자에서 랩톱 컴퓨터의 자판을 우다다다 두드리고 있었다. 잠시 후에 확인해보니, 맥락도 없고 분석도 없는, 에이포 반 장 분량의 스트레이트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이럴 거면 그냥 보도자료를 요약해서 올리면 되지 굳이 마카오까지 뭐하러 왔나 싶었다. 

 

다음날은 저녁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나는 아침부터 서둘러 마카오 시내 관광을 나섰다. 사전 조사는 해왔고 내 돈 들여 택시까지 타가며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짐이 많이 든 백팩이 무거워 고생이 됐다 ㅠㅜ) 

 

(뒷 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