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19. 18:08ㆍ동남아를 찾아서
동생의 프놈펜 집은 번화가에 가까운 넓은 거리에 있었다. 넓은 거리라고 해봤자, 오토바이들이 점령한 길가를 합쳐 간신히 4차선인 도로였지만 말이다. 1층은 상점이었고 그 위는 주택인, 유럽식 아파트였고 동생의 집은 3층이었다. 커다란 통창 밖으로 가로수가 우거져 아래 거리를 살짝 가려주었다. 비교적 고급이라 그런지 월세가 30만원 가까이 된다고 했다. 작은 방 둘에 거실과 주방이 분리된 아담한 크기였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 집에는 외부를 향해 뚫린 구멍이 있었다. 추운 겨울이 있는 우리나라에는 구멍이 뚫린 건물이란 주차장 빌딩 밖에 없지만, 비바람만 적당히 막으면 되는 열대 지방 주택은 아예 환기 구멍을 '영구히' 열어놓는 모양이었다. 지붕 바로 아래 벽 위쪽에 약간의 장식이 가미된 주먹만 한 구멍이 두 줄로 주르르 뚫려 있었다. (사진이 없네…) 그러고 보면 집 안에 에어컨이 없었다는 말일까? (기억이 안 나네…)
어차피 그 집에는 밤 늦게 들어와 잠만 잤지만, 아침에 깨어나보면 뚫린 구멍으로 바람이 술술 들어왔고 바로 아래 도로의 자동차 소리와 매연이 고스란히 올라왔다. 창문을 닫고 잤는데도 말이다.
그 집으로 두리안을 사들고 들어온 다음 날 아침의 일이 기억난다. 전날 시장에서 울퉁불퉁하고 단단한 갈색 껍질을 상인이 쩍 가르고 노란색 과육을 끄집어내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저건 꼭 사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게 바로 과일의 왕이라는 두리안이었다. 지독한 냄새를 풍겨서 호텔 같은 곳에서는 반입 금지라고 하던데, 길가에 잔뜩 쌓아놓고 즉석에서 깨뜨려 하얀 스티로폼 용기에 담아주는 부드러운 과육에서는 별 냄새가 나지 않았다.
동생이 캄보디아 말로 흥정을 걸자 잡담을 나누고 있던 여자 상인들이 탐탁잖다는 표정으로 한 상자를 내주었다. 상자를 살짝 열고 코를 킁킁거려 보았지만 역시나 별 냄새가 안 났다.
일단 집으로 가지고 와서 냉장고에 넣었다. 그러고 나서 다음 날 아침 일어나 거실로 나오는데 가스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 야, 까스 샜나봐!" 소리를 지르며 동생에게 달려갔다. 어제 사온 과일들을 꺼내 아침을 차리고 있던 동생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보기만 했다.
나는 "어.. 두리안 냄새냐?" 하고 멋적게 웃었다. 알고 보니 두리안은 숙성되며 살짝 상해갈 때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러면 맛은 더욱 좋아져, 망고에서 신 맛은 빼고 버터를 듬뿍 섞은 듯한 기막힌 맛이 되어간다.
프놈펜에서 1주일 이상 시간을 보내고 나서 우리는 앙코르와트가 있는 씨엠립으로 짧게 여행을 갔다. 동생은 자기는 이미 앙코르와트를 보았다며, 다시 볼 생각은 없다며, 호텔에서 쉬겠다고 했다. 그 대신 여기저기 전화를 걸더니 친절하고 순한 뚝뚝 오토바이 기사를 한 명 물색해줬다.
나는 3륜 오토바이 뒷좌석에 앉아 기사분의 뒤통수를 보며, 매연을 맡으며 흙길을 달려 앙코르와트, 앙코르톰 등 유명 유적지를 둘러보았다. 장대한 사원에 들를 때마다 기사님은 짧은 영어로, 정말 멋진 곳이라고, 최소한 1시간은 걸릴 거라고 말했지만, 나는 손짓발짓 동원하며, 금방 돌아올 거라고, 요 앞에서 그냥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고는 사원 앞까지만 가서 잠깐 서성거리다가, 혹은 빠른 걸음으로 외부만 휙 둘러보고 돌아왔다. 짧으면 10분, 길면 20분이 걸렸다. 그럴 때마다 기사님을 웃으며 탄식을 했지만, 나는 너무 더워서 그렇다고 핑계를 댔다. 유적은 정말 훌륭했지만, 나는 유적을 좋아하는 타입의 여행자가 아니었다.
기사님은 짧은 관람 시간으로 자신의 나라 유적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티를 내는 내가 좀 서운한 듯했지만 일찍 퇴근하게 돼 기분 좋기도 한 듯했다. 호텔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동생을 깨워, 다시 씨엠립에서 식당과 카페 순례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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