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 4. 21:46ㆍ유럽의 추억
그 다음부터는 여행 일정이 뒤죽박죽이었다. 숙소를 안 잡고 계속 밤기차를 탔기 때문이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숙박비를 많이 낭비(?)했기 때문에, 정액권인 유레일 패스를 이용해 당분간 기차에서 취침을 해야 했다.
밤기차의 침대칸을 숙소로 삼기 위해서는 잠들기 직전에 기차를 타서 깨어난 직후에 내릴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게 좋았다. 유럽을 상하로 이동해서는 그 거리가 제대로 안 나오고 북유럽은 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좌우, 즉 동서로 이동을 해야 했다. 오늘은 스페인, 내일은 헝가리, 모레는 이탈리아, 글피는 체코, 뭐 이런 식으로 유럽 대륙을 지그재그 수놓으며 젊은 체력을 탕진했다.
그러다보면 교통의 요지를 많이 거치게 되는데, 프랑크푸르트는 다섯 번쯤 들른 것 같다. 하지만 첫날 기차역에서 역무원에게 인종차별이 의심되는 폭언을 들은 후, 프랑크푸르트에서는 두어 시간 이상 머문 적이 없었다. 나중에는 아예 기차역 밖으로 나가지를 않았다. 딱히 보고 싶은 데도 없었고.. 독일에서 뮌헨이라든가 몇몇 지역 도시를 가긴 했던 것 같은데 거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고 인상도 좋지 않다. 그건 십년 후 1년 동안 독일 관련 일을 하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얘기가 좀 샜는데, 어쨌든 그렇게 밤기차를 타고 종횡무진 하다보니 안 그래도 향수병 비슷한 것을 느끼고 있던 차에 더욱 불안하고 외로워졌다. 여행 초반 동생과 헤어져 혼자 다니기 시작한 지도 몇 주가 지난 참이었다. 처음에는 홀가분했었는데, 나는 어느새 같이 다닐 한국 젊은이가 없나 기웃거리고 있었다. 짧은 영어로 몇 번 다른 나라 배낭족과 말을 섞어보긴 했어도, 동반자가되기는 무리였다.
당시 유럽은 막 여행 자유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 배낭족(옛날엔 그런 게 있었다..)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어느 도시에 가든 혼자, 혹은 무리지어 다니는 한국인 젊은이를 쉽게 볼 수 있었다. 물론 일본인이나 중국인이 더 많았고 아직은 서로 잘 구별을 못하는 상황이니까, 무작정 동양인 배낭족에게 다가가서 “한국인이세요?” 하고 물어보기는 좀 뻘쭘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생각해냈다.
혼자 기차역 같은 데 서 있다가, 근처에 한국인이다 싶은 젊은이가 보이면 혼잣말을 한다. “지금 몇 시지?” 혹은 “아, 날씨 좋은데?” 등등. 그러면 그 사람도 한국인일 경우, 그리고 나랑 같이 다니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경우, “앗, 한국인이세요?” 라며 말을 걸어온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언제 어디로 갈 예정인지 얘기하고 일정이 맞으면 의기투합한다.
그중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남자애가 가장 인상 깊었다. 역시 밤기차를 타고 나서 아침 일찍 내린, 기차역 플랫폼에서 마주친 그 애는 특이하게 군복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건 마음에 안 들었지만, 강동원을 닮은 미모에 첫눈에 반한 나는 바로 동반자 구하기 작전을 수행했고, 그애도 내가 싫지는 않았는지, 뜨뜻미지근하게 그날 나랑 바르셀로나를 같이 다니기로 합의했다. 군대를 막 다녀온 터이기도 하고 외국인들에게 얕보이지 않으려고 일부러 군복 바지를 입고 다닌다고 했다. 뭐, 수긍이 가는 전략인 편이었다.
그런데 막상 같이 다니다 보니, 이 남자애는 나랑 여행 동반자로 전혀 맞지 않는 성향의 사람이었다. 삐걱삐걱거리며 간신히 오전 일정을 끝내고, 우리는 각자 시장에서 원하는 식재료를 사서, 공원에서 같이 샌드위치를 만들어먹기로 했다. 남자애는 전형적인 바게트에 햄과 치즈를 사왔고 나는 야채 종류를 사기로 했다. 그러나 중뿔난 나의 성격상 그냥 얌전히 토마토와 양상치 정도를 사가지 않은 것이다. 나는 시큼한 맛이 강력한, 지금 생각하면 사워도우 빵을 샀고, 또 전부터 눈여겨 봐두었던 울퉁불퉁한 초록색의 과일 같이 생긴 비싼 야채를 사갔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아보카도였다.
내가 사간 식재료를 보고 남자애는 경악했고, 낑낑대며 간신히 손질한 아보카도를 한 입 먹어보고는 혐오의 표정을 지었다. 나 역시 묘한 냄새가 나고 기름진 녹색 과육을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남자애가 사온 햄치즈 바게트 샌드위치만 부족하게 먹고 내가 사온 시큼한 빵과 아보카도는 버렸다. 다 먹고 나서 남자애는 한껏 경멸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뭐라고 비꼬는 말을 했다. 지금은 잘 기억 나지 않지만, 대충 ‘주제를 모르고 신기한 것만 찾는 김치녀들 덕분에 세상이 피곤해진다’는 류의 발언이었던 것 같다. 속상하긴 했지만 귀중한 돈과 식재료를 버린 나로서는 유구무언이었다.
남자애는 점심 먹고 바로 나를 찼다. 나는 별로 낙담하지도 않고 또 새로운 동반자와 하룻밤 밤기차와 새로운 도시를 찾아 나섰다. 비엔나에서는 멋진 부산 청년들을 만나 벽면 가득 거대한 황금색 그림이 전시된 클림트의 박물관을 같이 다녔고 피렌체에서는 영어가 유창한 똑똑이들을 만나 편하게 고건물들을 관광하며 진열창 가득한 색색의 샌드위치들을 서로 한 입씩 나눠먹기도 했다. 아침에 처음 만난 남자들과 하루 동안 우르르 몰려다니며 삼시세끼를 같이 먹고, 후식으로 젤라또까지 섞어먹는 사이가 되었다가, 저녁이면 쿨하게 헤어졌던, 아마도 내 생애 가장 재미있는 여행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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