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족 3 남프랑스의 히피와 요양원

2019. 3. 4. 20:23유럽의 추억

그래도 정말 첫 해외 여행다운, ‘눈이 번쩍 뜨이는 문화 체험’을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아비뇽의 거리예술제(프린지페스티벌)를 꼽아야 할 것 같다. 일부러 시간을 맞춰 갔을 리는 없고, 아마도 우연히 얻어걸린 며칠 동안, 글로만 읽던 서양의 히피 문화를 거리 공연자들을 통해 직접 볼 수 있었던 신기한 체험이었다. 사실, 길가에 벌거벗다시피 누워 한참을 흐느적거리며 신음하던 여자 무용수 말고는 별로 기억 나는 게 없지만…




그리고 다음 행선지인 아를에서도 공연을 하나 보긴 했다. 그곳은 고대 로마의 원형 경기장이 남아 있는 소도시였는데, 내가 도착했을 때 거기서, 역시 우연히도 록그룹 산타나의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물론 원형 경기장이란 곧 야외 공연장인 셈이니 뻥 뚫린 천장으로 엄청난 음량의 공연 음악이 고스란히 새어나왔다. 


그때 돈으로 3만원 정도가 입장료였던 것 같은데,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그보다는 고풍스런 원형 경기장을 빙 둘러 진을 치고 있는 히피들을 구경하는 게 더 재미있었다. 노란 머리카락을 길게 길러 색색의 실을 섞어 땋고, 홀치기염색을 한 면 소재 헐렁한 옷에 열심히 자수를 놓아 더욱 너덜거리게 만든 옷들을 입은 서양인들이 통기타를 들거나 아프리카 북 등 타악기들을 들고, 질세라 열심히 쳐대고 있었다. 


나도 그들 틈에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앉았다. 그들은 잠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거나 산타나의 음악에 귀를 기울이다가도, 갑자기 미친 듯이 북을 두드리며 ‘자본’의 음량에 저항이라도 하는 듯했다. 그러면 나 같은 구경꾼들은 산타나의 음악과 히피들의 음악 사이에서 잠시 관심의 갈피를 못 잡았다. 아무리 눈앞의 북소리가 커도, 공연장 안의 대형 스피커 음량을 따라잡기는 역부족이었다. 히피들도 그걸 아는 듯 풀이 죽어 보였다. 




원래 행선지였던 고흐가 말년을 보낸 아를의 요양 병원으로 갔다. 지금은 지역 문화센터로 쓰이고 있는 곳인데, 건물이 ㄷ자 형으로 둘러싼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곳이다. 고흐가 그림으로도 많이 남긴 정원이다. 


고흐도 당시 일종의 빈민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래도 그 옛날,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예쁜 건물에서 말년을 보낸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그 정도 복지는 불가능한 상황인 듯하다. 얼마전 저소득자 지원 쿠폰으로 무려 ‘스페셜’ 돈까스를 시켜서 먹는 걸 봤다며 분노하는 글이 소셜 미디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으니까.


글이 좀 샜다. 어쨌든 아를은 남프랑스답게 태양이 작열했고, 젊디젊었던 나는 하루 정도 끔찍하게 지저분한 유스호스텔에서 잔 다음, 기차를 타고 다른 나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