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9. 10. 16:03ㆍ미국에 가면 말이지
아직 스마트폰 지도가 일상화되기 전에, 미국 엘에이 출신 교포를 홍대 지하철역에서 만났다. 어디에 가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유명 초콜릿 카페 이름을 댄다. 그래서 약도는 프린트(!) 해왔냐고 물었더니, 그냥 슬렁슬렁 걸어 다니다 보면 발견할 수 있지 않겠냔다. 나는 그녀에게 “아이고 이 친구야, 내가 홍대 인근에서 10년 넘게 살았지만, 나도 가끔 길을 잃는 곳이 홍대 란다”면서 물정 모르는 미국 촌년을 타박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녀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이해했다. 그녀의 고향인 로스앤젤레스는 그런 도시였다. 모든 것이 넓게 퍼져 있어, 유흥가라고 해도, 쭉 뻗은 길 100미터 내외가 전부였다. 그러니 간단한 사전 지식만 있으면 어디를 가도 쉽게 목적지를 찾을 수 있었다.
내가 미국에서 몇 달 살던 당시의 거주지도 그런 유흥가 근처 중 하나였다. 정확히는 대학가였다. 대학 정문 앞 거리 두 군데에 각각 몇십 미터에 걸쳐 상점가가 형성돼 있으니 아무리 길을 몰라도 10분만 헤매면 원하는 가게를 찾을 수 있게 돼 있었다.
이런 식의 상점가가 유명 동네마다 하나씩 있었고, 그런 동네가 로스앤젤레스에 20군데는 넘지 않았던 것 같다. 주말마다 혹은 주중에도 도장깨기 하듯 한 군데씩 가봤는데 한 달 정도 되니 벌써 가볼 곳이 떨어져서 다음 달부터는 교외로 나들이를 다니기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우리가 거주지로 정한 대학가는, 대학가답게 적당히 북적이면서도 비교적 조용한, 세련된 동네였다. 할리우드나 산타모니카처럼 관광객이 밀려다니는 곳은 아니었지만 웬만한 프랜차이즈는 다 들어와 있고 특히 (코리아타운도 아닌데) 한국 기업들이 진출해 있어 눈길을 끄는 곳이었다. 아마 그 대학의 한국(계) 학생 비율이 높아서 그랬을 것이다.
당시 비비고라는 비빔밥 식당이 문을 막 열었는데, 어찌나 가성비가 좋고 사람이 하나도 없는지 감사해 하며 자주 갔더랬다. 심지어 말도 통했으니까! 물론 관광객 된 입장에서 다른 식당들도 다양하게 경험해야 하니까 눈물을 삼키고 발걸음을 자제했지만, 심정 같아서는 정말 매일 가고 싶었다. 일단 한국에서 먹던 비빔밥에 비해 식재료가 너무 튼실하고 싱싱했으며 양도 많았다.
사실 비비고만 그런 게 아니었다. 농업이 발달해서 그런지, 아니면 물류가 발달해서 남미에서 농산물과 인력이 값싸게 수입돼서 그런지, 모든 식당의 음식 질이 높았다. 물론 한국보다야 가격대가 높았지만, 지금과 비교하면 그렇게 비싼 편도 아니었고 1.5배가 조금 안 되는 정도? 그런데도 간혹 한국에서 걸리던, 쓰레기 같은 음식을 내주는 식당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곳 미국의 식당에도 불쾌한 요소가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팁이었다. 음식을 먹고 나면, 메뉴에 씌어진 것과 전혀 다른 금액이 적힌 계산서가 눈앞에 날라져 왔다. 여기에는 부가세가 메뉴 가격에 포함이 안 돼 있기 때문이다. 주마다 다르긴 하지만 10퍼센트 내외의 가격이 덧붙여진다는 걸 뻔히 아는 상황에서도 계산서를 받으면 흠칫 놀랄 때가 많았다. 그런 금액에다가 팁까지 더해서 지불해야 하는 게 이곳 식당의 룰이었다.
당시에는 10퍼센트 내외로 합의돼 있던 팁을 점차 15퍼센트로 높이려고 요식업 종사자들이 담합이라도 하는 분위기가 팽배했었는데, 요즘은 20퍼센트 이상이 공정가로 홍보되고 있다니 참.. 어떻게들 외식을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팁 문화의 살벌함을 느낀 건, 엘에이의 웨이터, 웨이트리스들의 태도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설득의 심리학]의 내용이 널리 알려져 적용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긴 한데, 한마디로 그건 ‘미소와 배려 공격’이었다.
엘에이라는 지역의 특성 때문이겠지만 유난히 외모가 훌륭한 웨이터, 웨이트리스들이 많았다. 그들은 외모뿐 아니라 거의 연기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손님에게 퍼부을 때가 많았다. 얼이 빠질 정도로 친절과 관심의 스몰토크(메뉴, 날씨, 옷차림, 교통편, 일정)를 베풀어서 팁을 많이 내놓도록 압박하는 거 말이다. 사실상 엘에이에서의 몇 달 생활 동안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미국인과의 상호작용이 이들이었는데, 그래서 더욱 압박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친절과 관심을 쏟아내며 경직된 미소를 짓는 종업원들을, 나는 거의 매번 괴상한 기분을 느끼며 뚫어지게 쳐다보곤 했다. 그리고 좀 다른 경우에서 그들의 진짜 기분을 엿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그건 지난번에 쓴 홀푸즈마트에서였다. 거기 계산대에는 늘 유쾌한 휘파람을 불며 고객을 응대하는 흑인 남자 노인 계산원이 하나 있었다. 그는 휘파람 솜씨도 좋았지만 웃는 얼굴로 가벼운 농담을 잘 걸어서, 손님들을 어쩔 수 없이 웃게 만들곤 했다.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그냥 원래 저런 성격이려니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좀 구석진 길을 통해 홀푸즈마트에 접근하던 나는, 어느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서 그 남자가 혼자 밥을 먹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늘 웃는 얼굴이던 그의 표정이 너무 어두웠다. 밥을 먹고 있으니 쉬는 시간이고 딱히 급해 보이지도 않는 느긋한 상황이었는데, 거의 울듯이 일그러진 얼굴로 도시락을 먹는 그의 얼굴이 너무 낯설었다.
나는 약간 놀라기도 하고,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나 하는 연민을 느끼며 슈퍼마켓으로 들어갔다. 한참 장을 보고 나서 계산대로 갔는데, 거기엔 다시 그 직원이 온갖 농담을 하고 휘파람을 부는 퍼포먼스를 벌이며 다시 일을 하고 있었다.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감정 노동의 이면을, 그 탈력감을 확인한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팁을 내고 가는 손님은 거의 없었다. 그 직원이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슈퍼마켓 계산대에서까지 팁을 낼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럼 저 남자는 왜 저렇게까지 노력을 하고 있는 걸까? 한참을 멀거니 바라봤지만 답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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